brunch

매거진 지금 여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슴푸레 Feb 07. 2024

쪼르륵 마지막 세제 한 방울

  세탁기를 돌리려고 수납장에서 세제 통을 꺼냈다. 옆으로 긴 사각 세제 투입구에 액체 세제를 부었다. 쪼르륵. 세제가 흐르다 이내 멎었다. 빨래양에 한참 못 미치는 양이었다. 수납장을 다시 열어 9L 대용량 세제 용기를 들었다. 가벼워진 무게에 통이 번쩍 들렸다. 대용량 용기를 거꾸로 들어 소량 세제 용기에 부었다. 가는 줄기가 쫄쫄 흐르다 쪼르르 흐르다 쪼르륵 멈췄다. 통 옆면을 탁탁 쳐 보았다. 세제가 또 나왔다. 두어 번 반복했다. 손이 아팠다. 통에 물 붓고 흔들어 세탁기에 쏟을까. 그제야 손빨래해서 같이 넣으려던 속옷과 양말이 생각났다. 대용량 용기를 눕혀 소량 용기에 걸치고 욕실 세면대로 갔다. 비누칠을 해서 양말과 속옷을 빨았다. 세탁망에 넣어 세탁기를 돌렸다.


  눕힌 대용량 세제 통에서 소형 용기로 세제가 쪼르르 흘렀다. 또르륵. 대용량 세제 통의 주둥이 하단에 작게 세제 방울이 맺혔다. 점점 방울이 커졌다. 다시 쪼르르 흘렀다. 쪼르륵 멎었다. 서둘러 거실에서 휴대폰을 가져왔다. 찰칼찰칵. 찰칵찰칵.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연신 촬영 버튼을 눌렀다. 더 이상 소량 용기로 세제가 떨어지지 않았다.


  꿀은 꼭 둥글고 네모난 꿀병 바닥에 1cm쯤 남았다. 끈적하게 들러붙어 유리병을 뒤집어 바닥을 통통 쳐도 종지엔 얼마 안 떨어졌다. 부엌 서랍에서 깔때기를 찾아 작은 병에 걸치고 꿀통을 거꾸로 들면 꿀은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긴 해도 작은 병 안에 쫄쫄, 쪼르르. 쪼르륵 담겼다. 그래도 병에 붙은 꿀은 따뜻하게 데운 우유나 물을 부어 후후 불며 마셨다.


  다 쓴 세제를 보니 꿀이 생각났다. 꿀을 생각하고 있으니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를 생각하니 절약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수돗가와 찬물과 고무장갑과 빨래판이 생각났다. 생각이 점점 조밀해져서 후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절약은
미처 깨닫지도 못하게
내 유전자에 깊게 새겨졌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제#마지막한방울#절약#검약#유전자


매거진의 이전글 날은 차차로 차차로 밝아 오다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