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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May 12. 2024

쓰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은

[오늘의 문장]

사랑하는 이여, 강하다고

날 칭찬해준 그 첫날 -

원하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해준 그날 -

그 많던 날 중 – 그날 -

그날은 – 부채 모양 금장식으로

둘러싸인 보석처럼 – 빛났어요 -

어렴풋한 배경이던 – 하찮은 날이 -

이 세상에서 – 가장 중요한 날이 되었어요.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


[나의 문장]

1993년 7월. 여름방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4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명덕이가 내게 와서 말했다.

국어 선생님이 교무실로 잠깐 내려오래.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심장이 요동쳤다.

교무실 끝, 강당으로 올라가는 복도에 선생님이 서 계셨다.


편지 잘 읽었다. 고맙다.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관통하는 주제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럼! 세상은 살 만한 것이지.

앞으로 잘 지내 보자. 너의 시선이 나는 참 궁금하구나. 


일주일 전, 2학년 1학기 마지막 국어 시간엔 반 아이들 모두가 읽을 책 한 권씩을 들고 영복여고 숙지산 숲속에 있는 '푸른 교실'에 갔다. 난생처음 해 보는 야외 수업이었고 매미가 시끄럽게 울었다. 책을 읽는 애들보다 친구와 수다 떠는 애들이 더 많았고 너무 소리가 커지면 한 번씩 선생님이 조용! 하셨다. 그것도 잠시. 얘기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초록의 벚나무와 소나무 단풍나무가 따가운 여름 햇살을 가려주던 중 2 여름.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선생님을 보며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편지를 읽고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신 그날. 꿈을 꾸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글로써 말해야겠다고.


그날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금요문장#라라크루#에밀리디킨슨#수원#영복여중#푸른교살#국어#조찬용선생님#시인인선생님을너무나닮고싶었다#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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