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고 단지 길가에 열매 몇 알이 떨어져 있었다. 밤색으로 익은 길동그란 자태에 와, 대추다! 했다. 거의 동시에 대추의 아삭하고 단 맛이 상상돼 군침이 돌았다.
안마당 왼쪽에는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떡국떡만 한 초록 이파리들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났다. 윤이 났고 부드러웠다. 잎에 꿀이라도 발라 놓았나. 대춧잎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 심심하면 이파리를 따서 소꿉놀이를 했다. 대추 이파리가 모여난 틈에서 작은 별 모양의 노란 꽃이 옹기종기 피었다. 꽃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빙글빙글 돌리며 놀았다. 여름 방학 때쯤 기다랗고 가는 순에서 연두색 열매가 열렸다. 열매를 따서 바지에 쓱쓱 문대 한 입 베었다. 싱그러운 풋사과 맛이 났다. 대추나무의 순을 잘라, 칼등에 반달 모양의 홈이 파인 검은색 도루코 칼로 뾰족하게 깎아 펜 비슷하게 만들었다. 잉크에 콕 찍어 일력에 선을 그렸다. 글씨는 잘 써지지 않았다. 해마다 대추나무에는 꽤 많은 열매가 열렸다. 밤색으로 익은 단 대추보다 풋내 나는 연두색 대추가 더 좋았다. 한 입 베면 입안 가득 퍼지는 달고 시큼한 냄새. 그건 여름 냄새였다. 장마에 후드득 떨어진 대추알을 주워 멍든 것은 버리고 성한 것을 씻어 입에 물었다. 가족들은 대추나무에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대추는 발길에 밟혀 처참하게 부서져 갔다. 노란 속이 빨개졌다가 검어졌다. 대추 부스러기는 화단에 던져졌다.
아파트 단지에 떨어진 대추에 눈이 닿자마자 열 살 때로 돌아갔다. 마루의 중문을 열고 대추나무를 감상하던 시절로. 안채는 팔렸고 재건축이 되었다. 대추나무는 베어졌을까. 아직도 마당에선 대추나무 이파리가 빛나고 있을 것 같다.
#대추나무#대추나무꽃#대추나무열매#대추#여름이가면대추가익는다#수원#삼성전자#유년#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