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자주색 세 글자가 세로로 박힌 하얀 천이 트럭 뒤꽁무니에서 나풀거릴 때 홀린 듯 남편에게 말하고 차를 세웠다. 서해안 고속 도로를 내리 달린 차가 나주 왕곡을 지나자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저만치 흰 바위들이 에워싼 월출산이 나타났고 영암 초입에서 무화과 트럭을 만났다.
그동안 무화과를 내 손으로 사 먹은 적은 없었다. 나주 친가나 외가에 가면 담 옆으로 서 있는 게 무화과나무였다. 넓고 넓은 초록 논을 보다 보다 지루해하면 광원이 오빠가 오토바이 태워 주까 했다. 광원이 오빠는 논둑길로 내려가기 전, 열매 하나를 뚝 따서 꼭지를 분질러 손에 쥐여 주었다. 무화과라는 거여, 먹어 봐 했다.
친할아버지 제사가 있을 때 두어 번 아버지를 따라 할머니 댁에 갔다. 그때마다 광원이 오빠가 무화과를 따 주었다. 와 부드럽고 달다. 뭐가 입에서 톡톡 터지네 했다. 수원에선 무화과를 보기 어려웠다. 무화과가 남도 이남에서 자란다는 걸 고등학교 한국 지리 시간에 알았다.
가끔 친정에 내려가면 아버지가 무화과를 따서 주셨다. 화분에 키우시기에 몇 알 안 매달려 있어도 서너 개씩 따서 딸애와 내게 꼭 건넸다. 으 이게 무슨 맛이에요. 저하곤 안 맞는 거 같아요. 아들애가 말한 후로 큰애에겐 더 이상 권하지 않으셨다.
무화과의 맛은 오묘하다. 껍질을 벗기면 풀 냄새가 훅 끼쳐 온다. 반을 쪼개 입에 넣으면 흰 과육이 사르르 녹는다. 밍밍하기도 하고 잘 익은 아보카도 같기도 하다. 가운데 붉은 꽃이 씨앗처럼 콕콕콕 박혀 있어 시각적인 충격을 주기도 한다. 깨처럼 터지는 무화과는 아주 은은한 산딸기 맛이 난다. 살짝 코코넛 맛도.
무화과는 마음에 그리움을 일으킨다. 무화과를 보면 나주 친가와 외가가 떠오른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와 큰댁의 광원이 오빠와 빨간 오토바이와 아득한 논둑길과 방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