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7개월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 준 첫 차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몇 년 새, 오래 탄 만큼 크고 작은 고장이 끊이지 않았으나 남편과 나 사이에는 일이 년 더 버텨 보자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달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 고속도로에서뒤 타이어가 처참히 터지면서 인정해야 했다. 이제는 보내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더 이상은 역부족이라는 것을.
첫애를 임신하고 출산 예정일을 세 달 앞두고 이 차를 샀다. 미스 때부터 100만 원씩 3년을 꼬박 모은 적금이 만기가 되는 때에 맞춰. 그리고 2010년 4월. 으으으으. 1분여의 진통이 3분 간격으로 쓰나미처럼 몰려오던 새벽 3시, 나는 차를 타고 조수석의 천장 손잡이를 움켜쥐며 아이를 낳으러 갔다. 큰애의 성장 앨범 사진을 찍으러, 복직 전 둘만의 여름휴가를 보내러, 세 식구 하늘공원으로 갈대를 보러, 첫돌에 맞춰 잔치를 하러, 친척분들의 경조사에 참석하러 가기 위해 남편은 열심히 차를 몰았다. 2년이 지난 2012년 11월. 으으으으으으으. 1분여의 진통이 3분 간격으로 역대급 쓰나미로 몰려오던 새벽 5시, 역시나 나는 차를 타고 조수석의 천장 손잡이를 움켜쥐며 둘째를 낳으러 갔다. 작은애의 성장 앨범 사진을 찍으러, 열감기로 펄펄 끓는 아이를 응급실에 데리고 가러, 첫돌에 맞춰 잔치를 하러, 친척분들의 경조사에 참석하러 가기 위해 남편은 계속해서 차를 열심히 몰았다.
10년 가까이 차 뒤 왼쪽 유리엔 '아기가 타고 있어요' 여덟 글자와 기저귀를 찬 아기의 그림이 붙어 있었고 두 애가 열다섯 살, 열세 살이 되는 동안 뒷좌석엔 서너 개의 카시트가 놓였다 바뀌었다 치워졌다. 둘이 셋이 되고, 셋이 넷이 되는 동안 차는 전국 각지를 종횡무진 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