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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K 사전쟁이

그 따위는 이 따위가 아니에요

by 어슴푸레

‘따위’가 주는 어감 때문에 제 나름의 쓰임을 부정당하는 예가 있다. ‘너 따위가 뭘 알아.’의 ‘따위’와 ‘추석을 앞두고 마트에 사과, 배 따위가 나와 있다.’의 용법 중 후자가 그렇다. ‘너 따위’의 ‘따위’가 주는 부정적 어감이 너무 센 까닭에 사람들은 ‘사과, 배 따위’의 ‘따위’조차 ‘너 따위’의 ‘따위’와 같은 것으로 인식해 버린다. 실은 후자의 ‘따위’가 고유어 ‘들’이나 한자어 ‘등(等)’, ‘등속(等屬)’과 비슷하게 쓰이는 것인데도, ‘너 따위’의 ‘따위’와 모양이 같다는 이유로 홀대하고 이들 쓰임을 보거나 들으면 몹시 기분 나빠한다. 실제로 사전 뜻풀이와 용례에 숱하게 쓰인 이를 두고 ‘등’의 오류 또는 비하 표현이라며 날선 목소리로 사전을 비판하기도 하고, 사전에서 ‘따위’가 쓰인 부분을 모두 ‘등’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부러 한자어 ‘등’이 아닌, 고유어 ‘따위’를 취해 기술한 사전 체계상의 특징이나, 어감이 나빠서 싫다면 ‘등(等)’, ‘등속(等屬)’, ‘들’ 중에 원하는 말로 바꿔 써도 된다고 아무리 안내해도, 최강 고빈도어 뜻 갈래 ‘따위「3」’으로 인한 ‘따위「2」’나 ‘따위「1」’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는 생각보다 대단하다.


언어 현실에서 각기 다르게 쓰이는 ‘따위’를 찬찬히 살피거나 알려 하지 않고 ‘사과, 배 따위’의 ‘따위’는 무조건 잘못이라는 다소 과격한 논리에 가끔은 말문이 막히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말은 사람의 삶을 닮아서 태어나 자라고 성장하고 늙고 사라진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어진다. 지금은 한자어 ‘등(等)’에 ‘따위「2」, 「1」’가 눌려 그 쓰임조차 의심받고 있지만, 과거 어느 때에는 ‘등’과 비슷하거나 더 많이 쓰인 때도 있을 것이라고. 정말 그러한지는 시간을 통과한 ‘따위’의 쓰임을 들여다본 후에야 확언 수 있겠지만.


뜻 갈래 「1」에서 점점 의미가 확대되고, 용법이 달라져 별도의 새 뜻 갈래가 사전에 오르는 것. 그러다 새 뜻 갈래가 처음 태어난 원 뜻 갈래보다 더 많이 쓰여 사람들에게 훨씬 더 익숙해지는 것.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존 뜻 갈래의 의미와 용법이 희미해져 급기야 어색하거나 잘못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세상을 사는 사람의 삶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래서 나는 비록 지금은 익숙지 않더라도 과거 어느 때에는 가장 익숙하고 일반적인 쓰임이었음을 사전 용례와 여러 언어 사실들에서 사람들이 확인하고 깨달아 구분해 쓰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오늘도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말뭉치를 뒤지며 사전을 고치는 이유이다.


따위

「의존 명사」

「1」 ((명사나 어미 ‘-는’ 뒤에 쓰여)) 앞에 나온 것과 같은 종류의 것들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 ¶거리에는 오징어 따위의 건어물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밭에 상추 따위를 심었다./감초주는 동맥 경화증을 예방하는 따위의 효과가 있다.

「비슷한말」 들, 등(等)

「2」 ((명사나 어미 ‘-는’ 뒤에 쓰여)) 앞에 나온 종류의 것들이 나열되었음을 나타내는 말. ¶냉장고, 텔레비전, 세탁기 따위의 가전제품./텃밭에 상추, 호박, 고추 따위를 심었다./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는 따위의 일을 통틀어 부엌일이라고 한다.

「3」 ((명사, 대명사, 어미 ‘-는’ 뒤에 쓰여)) 앞에 나온 대상을 낮잡거나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 ¶아버지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내 괴로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너 따위가 뭘 안다고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냐?/최고니 뭐니 하는 따위의 말로 환심을 사려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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