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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금 여기

오히사시부리데스

by 어슴푸레
박 상!

입국장 벤치에 앉아 목을 빼고 국제선 도착 출입문을 힐끗거렸다. 약속 시간은 이미 20분이 지났고 카톡엔 별다른 메시지가 없었다. 이내, 2025 경주 APEC 행사와 관련하여 입국에 시간이 지체되고 있으니 양해를 바란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바로 그때였다. 검고 얇은 반패딩 차림에 까만 뿔테를 쓴, 한 여성이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끌고 국제선 출입문 밖으로 나오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리 센세? 예전과 스타일이 달라 긴가민가했다. 박 상 하고 나를 부르며 활짝 웃자 고르고 하얀 이가 리넨 커튼처럼 드러났다. 나는 그 즉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센세에게 달려갔다. 두 손을 감싸쥐고 외쳤다. 곤니치와! 오히사시부리데스!


-2시까지 강남에 가려면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먼저 도착한 선생님이 일 보고 있겠다고 해서 아직 시간 좀 있어요.

-다행이에요. 얼굴만 보고 헤어질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자, 고레와 프레젠토데스!

-아리가토! 오메데토!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생각을 다 했어요?

-아이가 어릴 때 했던 말을 기록했었는데요.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주셔서 나오게 됐어요.

-와. 재밌겠다. 호텔에 도착해서 밤에 쉴 때 읽어 볼게요.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센세, 일본에서 한국어 수업하실 때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네. 고마워요 박 상.

-도이타시마시테.


인파가 한차례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입국장은 금세 한산했다. 인적 드문 대기석으로 이동해 20년의 시간 중 가장 힘든 근 1, 2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이를 비롯한 내 모든 힘듦의 이유가, 해결되지 않은 부모님에 대한 감정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고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박 상. 우린 멀리 떨어져 있어도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네요. 요가를 10년 넘게 했는데. 하는 동안 명상을 하면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어요. 이 감정은 뭐지?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거지? 계속 안을 들여다보다가 그 원인이 가족에게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도 박 상이랑 같은 마음이었어요. 어느 날은 말 안 하면 안 되겠어서 엄마한테 이러이러한 일들이 힘들었다고 얘기했어요. 모르는 줄 알았는데 정작 내가 힘들어하는 걸 다 알고 계셨어요. 알았지만 따뜻이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그랬다고. 배운 적이 없어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걸로 크게 위로받았고. 그 후로 후련해졌어요.


몇 분을 이야기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얼마나 깊이 공명하는지가 중요할 뿐이었다. 20년 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박봉임에도 법원 사거리 앞에 위치한, 수원의 한 어학원에서 1년치 일본어 수강료를 큰맘 먹고 결제했었다. 방화동에서 동수원까지 왕복 4시간 반이 넘는 출퇴근이었음에도 밤 9시 마지막 타임을 듣고 10시가 넘어 집에 갔다.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는 갈 마음이 없었고. 뭔가를 배우고 싶은데 크게 부담되는 건 싫었다. 그러다 고 1 때 제2 외국어로 배운 일본어가 생각났다. 1년 열심히 배워서 일본으로 박사 유학을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아리 센세는 초급반 선생님이셨다. 중급반에 올라가기 전까지 월수금 3개월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났다.


작고 여린 체구에도 에너지 넘치는 센세가 좋았다. 하늘거리는 노란 시폰 원피스가 잘 어울렸고 굵고 긴 웨이브를 한 머리칼은 아름다웠다. 일본어를 참 재밌게 가르쳐 주셨다. 수 세는 걸 배울 땐 실제 일본과 비슷한 종이돈으로 상점에서 물건 사는 놀이를 하기도 했고, 주말에 뭐 했는지를 월요일 수업 시작할 때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일본어로 묻고 대답했다. 회화가 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형용사, 나형용사부터 1그룹 동사, 2그룹 동사, 3그릅 동사의 활용, 동사와 형용사의 부정형 등을 직접 풀어 오는 숙제를 별도로 내 주셨고, 이형용사가 끝날 때는 교재의 단어로 빙고 게임을 시키기도 했다.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한 달에 두 번씩은 주말에 따로 만나 동동주에 파전도 먹고 옷을 사러 같이 남문에 갔다.


결혼 전 싸이월드 해킹 사건이 생기면서 급히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 그러면서 인간관계가 대폭 정리되었다. 전화번호부를 새 폰에 옮기지 않으면서 저장돼 있던 연락처를 거의 잃어버렸다. 그 여파로 센세와도 연락이 끊겼다.


한 달 전, 아이와 일본어 교실에 등록하지 않았다면 아리 센세와 연이 닿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그때의 교재를 들춰 보았고 그 속에서 센세가 직접 만들어 나누어 주었던 수업용 프린트가 손에 잡혔다. 문서 맨 아래에 센세의 이메일 주소가 타이핑되어 있지 않았다면 다시 만나지는 못했을 거였다. 그날 밤 센세에게 메일을 썼다. 나를 기억하느냐고. 당시의 교재와 센세의 유인물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고. 그때 감사했다고. 보고 싶었다고. 우리 네 식구가 담긴 사진 한 장, 글로벌 어학원 교재와 프린트 사진 한 장씩을 메일에 첨부했다.


다음 날 센세는 너무나 반갑게 답장을 주셨고. 마침맞게 다다음 주에 한국에 2박 3일 동안 머무를 예정이라고 했다. 빗쿠리시마시타!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서로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고. 일상을 나누고. 그러다 센세를 만났다. 장장 20년 만에.


-고레.

-와. 말차케이크네요? 잘 먹을게요! 주신 선물로 커피 타임 해야겠어요.

-그럼요! 커피 타임 필요하죠! 딸이랑 드세요.

-아리가토고자이마스!


센세의 캐리어를 끌고 택시 승강장까지 배웅했다. 기사님이 짐을 트렁크에 싣자 센세가 택시 문을 열고 안으로 몸을 숙였다.


-조심히 가세요. 내년에 꼭 도쿄에서 봐요.

-네. 연락할게요. 다음에 줌으로 만나요.


여전한 미소와 더 깊어진 눈빛에 따뜻함이 가슴속에 가득 차올랐다. 곱고 선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어 감사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생각하며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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