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분 뒤면 서울로 출발한다.
엄마 없이는 하루도 못 자는 딸애의 심적 안정을 위해 1시간 조퇴를 하고 강화도 지연이네 집으로 출동한 지 이틀째다.
언제나처럼 극진한 대접을 받고
뭘 하지 않아도 문제 될 것 없는 손님의 특권을 맘껏 누리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름 휴가를 보냈다.
5시만 되어도 강제 기상을 일으키는 8월 아침 볕에 느긋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어도, 시끄럽게 울어 대는 매미 소리에 돌아누워 딴전을 피워도 전혀 죄스럽지 않은 여름 아침을 두 번이나 맞았다.
밥을 하지 않아도, 장을 보러 나가지 않아도, 청소를 하지 않아도,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이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큰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갖고만 있는 아이처럼 첫날 아침엔 소파에 앉아 휴대폰만 보았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가져온 산문집을 들고 데크 위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하라 언니가 내려 준 향긋한 드립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두 시간 만에 다 읽고 수영하며 노는 딸애와 지연이를 지켜보다, 초록 원형 철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았다, 사지를 쭉 펴고 하늘을 바라봤다를 반복했다. 물기를 가득 먹은 습한 바람이 머리칼을 쓸고 두 뺨을 핥고 어깨를 감쌌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밀도 있게 더 꽉 나를 안았다.
이틀 저녁에 걸친 바비큐 파티와 과하지 않은 술자리, 가볍고도 유쾌한 대화를 나누며 음악과 이야기와 바람과 함께하는 시간. 날아드는 불나방과 섀시 유리창에 들러붙는 물방개, 자꾸만 줄을 타고 내려오는 거미들은 훈증되는 데크 위 나무 탁자를 호시탐탐 노렸다. 모기향이 달팽이 모양으로 타들어 회색 재가 되어 떨어지는 걸 지켜보는 것도 몇십 년 만이었다. 여름 밤의 정취란 이런 것, 여름 방학이란 이런 것, 여름 휴기란 이런 것임을 맛있는 냄새, 즐거운 이야기, 편안한 음악과 함께 초공감각적으로 누렸다.
산문집을 다 읽어도, 소논문을 요약해 읽어도, 채 오후 3시가 안 된 시간이 비현실적이었다. 와, 뭔가 많이 했는데, 마음이 하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 '바람멍'도 했는데 아직도 몇 나절이 남았다니 강화도의 시간은 하루가 48시간쯤 되는 걸까.
건넌방에서 노트북을 들고 나와 '금쪽 상담소'를 보다가, 장기하의 음악을 듣다가 별 수 없다는 듯 브런치에 로그인을 했다.
한참 닌텐도 Wii로 지연이와 게임하던 딸애가 모니터를 힐끗 본다.
"엄마, 또 브런치에 글 쓰는구나?"
"응."
"재밌어?"
"글쎄."
언니와 나란히 앉아 가드닝에 대해, 건너편 방앗간과 건강원 주인 내외의 넉넉함에 대해, 이강리 마을 회관 옆으로 족히 몇백 년은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끝내 나는 퇴직 후 연구진으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떼지 못했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너무 심상해 눈물 날 만큼 행복했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툭, 하고 미래에 대한 얘기로 흠을 내기 싫었을까.
카톡으로 낙방을 처음 알린 그날, 하라 언니는 강화도로 놀러오라고만 했다.
언니네 가족들 덕분에 깊은 위로와 힘을 받고 돌아간다.
언니, 언제나처럼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