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것이 좋다. 해묵은 공책에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내며 집중하는 것도 좋고, 떠오르는 장면을 다다다다 무작정 자판으로 치는 것도 좋다. 서랍 속 엽서를 꺼내 그리운 이의 이름을 적고 무슨 말로 시작할까 고민하는 것도 좋다. 다 좋은 것들이지만 지금의 나를 멈추어야 비로소 쓸 준비가 끝난다.
깍두기공책에 "영희야, 이리 와. 나하고 놀자."를 또박또박, 큼직큼직 써야 했던 국민학교 1학년 시절, 다섯 번씩 쓰느라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도 나는 쓰는 게 좋았다. 숙제를 내면 공책에 '참 잘했어요' 보라색 도장이 땅땅땅 찍혔고, 글씨를 예쁘게 잘 썼다는 칭찬을 덤으로 받았다. '하물며'를 이용해 '짧은 글 짓기'를 하고 한 사람씩 일어나 발표하던 국어 시간. 수줍음이 많았지만 국어 시간은 늘 기다려졌다. 내가 쓴 글을 읽을 때마다 친구들이 "와~" 하는 게 신기하고 믿을 수 없었다.
쓰는 삶을 소망했다. 장래 희망란에 언제부턴가 '작가'를 적기 시작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고,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글 쓰지 않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꼭 단서처럼 '언젠가는'을 덧붙였다. 서른여덟 즈음, 김훈 선생님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읽었다. 16년간의 기자 생활과 전업 작가의 전향 이야기에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그 무렵 신기섭 시인의 <나무 도마>를 읽었고, 등단과 동시에 세상을 뜬 비극적 삶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조급해졌다.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신촌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소설 창작 입문을 10주에 걸쳐 배웠고, 몇 년 뒤에는 홍대 근처에서 독립 출판을 6주에 걸쳐 배웠다.
시작만 늘 떠들썩하게, 매듭은 짓지도 못한 일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 갔다. 첫 단편인 <당신께 꽃을 바칩니다>가 그랬고, 독립 출판물 <그 시간들이 모여 내가 되고>가 그랬고, 에세이 버전의 <딸애가 말하고 엄마가 엮은 연상어 사전>이 그랬으며, <전자 앞 양복점집 딸>이 그랬다. 어느 것 하나 완성하지 못한 채, 쓰다 만 원고들만 노트북에 잠재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이 길이 아닌가벼~'를 연발하며 경로를 여러 번 이탈했다. 졸업 후 14년이 지나서야 박사를 따겠다고 딴 학교로 입학을 했고 겨우겨우 수료를 했다. 내 삶에도 GPS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삶은 녹록지 않았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길 찾기가 어렵다.
또 그 사이, 같이 소설을 쓰고자 했던 이의 일부는 등단을 했고, 등단을 하지 않은 이는 출간 작가가 되었다. 모두 각자의 시간을 견디며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가만히 내 글쓰기의 목적과 원천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게 글쓰기는 대중적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씻김굿' 같은 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쓰기라서. 용서를 구하고, 빚을 갚고, 고마움을 표하고, 사랑을 말하고, 마음껏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도구가 글쓰기밖에 없어서.
글을 쓰는 동안 9 to 6 매일 여덟 시간씩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쓰면 얼마나 달라질까를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지도 살폈다.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의 구본형 선생님처럼 이제라도 '자기 경영'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 신어를 수집하고, 사전 원고를 쓰고, 교열 교정을 보고, 회의 자료를 작성하고, 민원을 처리하는 지금의 사전 일도 결이 다른 글쓰기일 뿐 크게는 글쓰기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얻는 것도 분명 많다. 그런데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에서 보면 계속해서 이곳에 안주해 있는 것이 소모적이라는 생각은 떨칠 수 없다.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 아직은 아무것도 저지르지 않은 상태이기에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 '아무것도 아닌'이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점이 모순이라면 모순일 뿐.
쓰는 삶을 살기로 한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무작정 쓰는 수밖에.
쓰다 보면 결론이 나겠지.
어떤 길을 가고야 말 것인지 끝내는 결론이 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