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용 인사 카드를 썼다

by 어슴푸레

언어정보연구원 3년 차. 23년 3월 1일 자로 본 소속이 후 오늘로 1100일째다.


두 애가 학교에 가고. 어제 미처 확인 못 한 녹색 메일함을 열었다. 올 3월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연구원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인사 카드를 작성해서 개인 정보 동의서와 함께 회신하라는 내용이었다.


학부부터 박사 수료까지 차례로 학위, 전공을 기록하는데 연대기적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밀도가 촘촘했다.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구나. 생각이 일기도 했다.


예전의 나라면 자기 객관화란 이름으로 냉혹하게 자신을 비난했을 거였다. 학부, 석사, 박사 전공은 다 다르고. 학교는 왜 이리 오래 다니고 있으며. 국어원은 뭐 하자고 눌러앉아 있었고. 변변한 직함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으며. 명실상부 AI 시대에 여태 고리타분하게 사전만 파고 있느냐면서.


놀라운 일이었다. 인사 카드를 쓰는 동안 22년 사전쟁이의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았다. 같은 일을 연속성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할 수 있는 것이. 그 기회를 얻어 힘을 보태고 유무형으로 회향할 수 있는 것이 자체로 기적이었다.


지금껏 이 길을 걸어온 것이 좋다. 이 몸을 받아 삶을 경험해 온 것이 좋다.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여여히 존재해 온 것이 좋다. 그 어떤 이름에도 미혹되지 않고 더는 끌려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준 모든 인연과 그 작용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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