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저녁도 못 먹고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밤이면, 나는 꼭 뚝배기로 남편 몫의 밥을 짓는다. 한 사람을 위한 정갈한 밥상으로, 뚝배기 밥만 한 게 없다.
계량컵에 조금 못 미치게 푼 쌀을 바가지에 붓고 물을 틀어 쓱쓱 씻는다. 물을 두어 번 따라 버리고, 뚝배기에 쌀을 넣고 손대중으로 물을 잡는다. 주로 도착 20분 전에 뚝배기를 가스 불에 안친다. 센 불로 화르륵. 쌀 위로 뜨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반원형의 거품이 쌀 위에서 포봉퐁 잇따라 터진다. 거품이 사라지고 쌀 위에 물이 완전히 잦아들면 뚜껑을 덮고 중불로 줄인다. 5분쯤 끓이다 약불로 낮추어 1분쯤 더 끓인다. 불을 끄고, 완전히 밥에 뜸이 들 때까지 기다린다. 구수한 밥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진다.
가끔 남편이 몇 시쯤 도착한다는 카톡을 주지 않을 때가 있다. 삑삑삑삑 삑삑삑삑-. 곧이어 도어 록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온다. 그때부터 나는 분주해진다. "어, 왜 연락 안 했어? 아직 밥 안 안쳤는데. 씻고 와. 20분쯤 있어야 돼."
급히 가스 불을 켜고, 뚝배기를 안치고,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 나눔 접시에 담고, 다른 화구에 프라이팬을 올려 계란말이를 만든다. 마음이 급하니, 뚝배기에서 밥물이 넘치는 것도 모른다. 우르르 소리에 후다닥 뚜껑을 열고, 거품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재빨리 뚜껑을 덮고 불을 줄인다. 앗. 불을 안 껐나 보다. 탄내가 솔솔 난다. 다시 후다닥 가스 불 앞으로 간다. 재빨리 불을 끈다. 망했다. 때마침 남편이 욕실에서 나온다. 식탁 앞에 앉아서 밥을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본다. 나는 다급해진다. 뚝배기 뚜껑을 열고 밥알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어 본다. 윽. 설겅설겅하다. 몇 분 더 있어야 한다.
"쫌만 기다려. 아직 뜸 덜 들었어."
"응."
몇 분 더 있다 밥알을 확인한다. 조금 아쉽지만, 배고픈 남편을 계속 기다리게 할 순 없다. 나무 주걱으로 공기에 밥을 뜬다. 흰 김이 밥 위에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니다 다를까 뚝배기 바닥이 눌었다. 누룽지에 물을 붓고 다시 가스 불을 올린다. 약불에서 누룽지가 흐물흐물하게 퍼질 때까지 끓인다. 남편이 밥을 다 먹어 갈 때쯤 김이 펄펄 나는 숭늉을 대접에 담아 공기 오른쪽에 놓는다.
예상 외로 괜찮게 됐나 보다. 금세 한 공기 뚝딱이다. 숟가락으로 뜬 숭늉을 후후 불어 가며 맛있게도 먹는다. 지금이 몇 신데. 얼마나 배고팠을까.
"와, 잘 먹었다!" 남편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진다.
뚝배기 밥을 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음식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대개 그렇지만, 결과물이 그럴듯하게 나오면 뿌듯하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면 어디 하나 꼭 말썽이 생긴다. 음식이 타거나, 간이 안 맞는다. 심하게 싱겁거나 눈이 찌푸려지게 짜다. 재료는 단단하고 무른 정도에 따라 삶거나 끓이거나 찌거나 볶는 시간이 다르다. 그 시간을 적정하게 맞추지 못하면 음식 맛이 좋다는 말을 듣기 어렵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첫 번째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타이밍'이다.
비단 요리만 그럴까.
뚜껑을 덮고 밥알에 뜸이 다 들 때까지 기다리듯, 세상살이에도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뚝배기의 열기가 쌀에 알알이 퍼지고, 따뜻한 김이 밥알에 완전히 스밀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멈추어야 한다. 시간을 들이고 일정 단계를 넘어서야 비로소 뜸이 들고 맛이 든다. 익은 쌀에 제맛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수고를 들여야만 한다.
남편에게 했던 말이 메아리가 되어 나에게 되돌아온다.
아직 뜸 덜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