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완도살이 4 - 전국노래자랑 편
일요일 정오가 가까워오는 시간, 나는 서둘러 라면을 끓여서 거실 테이블 위에 갖다 놓고 소파에 앉아 먹으며 MBC 정오 뉴스를 진지하게 시청했다. 라면을 다 먹을 즈음 뉴스는 끝났고 나는 간식으로 사다 놓은 빵을 후식으로 먹으며 오로지 출발 비디오 여행이 방송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헉, 이럴 수가.
뉴스가 끝나고 다음 방송순서를 소개하는 화면에서는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나의 최애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여행은 온 데 간 데 없고, 목포 MBC 송년특집 음악회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있을 수가. 나는 실망감을 안은 채 송년음악회를 보기 시작했다.
첫 순서로 가수 흰(Hynn, 본명 박혜원)이 나왔다. 예능 프로 놀면 뭐 하니에서 나온 WSG워너비로 불렀던 '그때 그 순간 그대로'를 첫 곡으로 몇 곡을 불렀다. 강추위에 바닷가에서 하는 어려운 라이브 조건에도 흰은 특유의 고음을 자랑하며 선방했다.
나는 흰의 노래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다른 채널에서는 뭐 하나 하며 돌렸다. 옆 방송에서는 전국노래자랑이 나오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전국노래자랑이었고 고 송해 선생의 뒤를 이어 진행자가 된 김신영의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 봤다.
팔순 할머니가 나오셔서 끊이지 않게 계속 여러 노래를 하시는 모습과 이를 끊지 않고 옆에서 손녀처럼 응원해주는 김신영의 모습은 송해 선생과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는데 신영은 벌써 진행자로 자리를 잡은 듯 여유 있어 보였다.
반가운 초대가수도 나왔다. 사랑이 뭐길래라는 공전의 히트 드라마에 삽입된 타타타로 유명해지신 김국환 선생. 이제는 연세가 많이 들어 보이셨다. 찾아보니 올해 76세가 되셨다. 배 들어온다라는 신곡을 부르셨는데 건재하신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선생도 나이가 들고 나도 들고 우리 모두 나이가 든다. 나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김국환 선생을 응원한다.
노래자랑에 빠질 수 없는 청소년들의 발랄한 모습도 여전하다. 중학교 3학년 친구 둘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귀엽다.
완도에서 보낸 일요일에 나는 늘 보던 출발 비디오여행 대신에 전국노래자랑을 만났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 시대 서민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마당이 되어준 전국노래자랑. 누군가는 올드한 B급 정서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하지만 전국노래자랑처럼 땀내 나는 우리 서민들의 정서를 담아내면서도 인기 있는 프로가 또 어디 있으랴.
나는 일요일이 되면 다시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볼 것이다. 하지만 전국노래자랑이 완도에 온다면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출전할 것이다. 전국노래자랑 완도 유치를 신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