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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Dec 04. 2020

여섯 살 평생의 90년대 기억 조각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의 기억 




몇 년 전,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면서 그동안 나에게 잠재되어있던 작은 기억의 조각들을 떠올렸다. 


나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던 장면들로 구성된 내 6살 평생의 기억들, 이것은 어린 아이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허구일까? 아니면 잠재된 기억력의 장면일까? 평생을 따라다니는 미스터리다. 



95년도에 브라질로 이민을 간 나는 아직도 한국에서 살았던 여섯 살 평생의 기억들이 사진처럼 여러 장면들로 남아있다. 물론 이 기억들은 조금 조작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90년대에 가진 유일한 한국에서의 추억이기에 모두 내 기억이라고 믿고 싶다. 



나는 청량리라는 곳에 살았었는데, 그 동네에는 큰 정신병원이 하나 있었다 (글을 쓰면서 추억 속에 잠겨 검색을 해보니 2018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내가 그 병원에 대해 기억하는 이유는, 한번 그곳에서 정신병 환자가 탈출해서 온 주민이 벌벌 떨며 불안해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엄마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내 손을 붙잡고 서서 그 얘기를 하시던 게 기억이 난다. 나와 4살 터울인 오빠는 우리 집 담 넘어 뒤쪽으로 환자복을 입은 사람이 말을 걸어왔었다고 말했는데, 과연 어린 마음에 관심을 받고 싶어서 지어냈던 얘기일까 아니면 진실일까 아직도 궁금하다. 



남미에는 눈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남미 사람들은 평생 눈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수두룩 하다. 하지만 나는 겨울에 눈이 오면 오빠를 따라 동내에서 가장 경사진 길을 찾아 눈썰매를 타기도 했고 여름에는 가끔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우르르 대리고 나가 동네 구멍가게에서 100원짜리 쭈쭈바를 사주시곤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아,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원장님 남편이 산타 복장을 하시고 굴뚝 대신 문을 열고 선물 주시고 간 것까지도...(5살 때부터 산타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꾸력'을 증명하듯 영광의 상처들은 아직도 내 몸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다. 머리에는 아직도 만져지는 혹이 하나 있는데, 오빠가 동네 친구들과 야구를 놀 때 나는 게임을 하는지도 모르고 휘두르는 야구 배트에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아 생겨난 것이다. 또 하나는 입술 밑에 작은 상처가 하나 있는데, 이것 또한 오빠랑 '계단에서 구르기 게임'을 하다가 생긴 것이다. 그때는 컴퓨터나 동영상을 보는 것보단 맨몸으로 하는 놀이들이 많았다 보니 여기저기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어려서부터 우리 부모님은 꽤 개방적이셨고 나를 독립적으로 키우셨던 것 같다. 나는 유치원에 혼자 등교하곤 했다. 걸어서 5분 거리 남짓이었다고는 하나,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의아하긴 하다. 이민을 오고 나서 그 독립성은 훨씬 더 강해졌고 지금도 성격유형검사를 하면 그런 면이 높게 나오곤 한다 (조기 교육의 중요성?). 아침마다 아빠한테 100원 200원을 타서 가는 길에 사탕이나 껌을 사 먹곤 했는데, 추억의 먹거리들을 검색해보면 나오는 그런 류의 불량식품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포청천'을 알까? 그 시절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했던 중국판 '솔로몬의 선택'과 같은 드라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용 작두로 죄인의 머리를 내리쳐 심판하는 그런 잔인한 드라마였는데 5살짜리가 왜 그런 걸 보며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퇴근하실 시간에 맞춰 그 당시 최고의 중국 드라마 '판관 포청천'을 보며 피자를 시켜 먹었다. 가끔 아빠가 술을 드시고 늦게 들어오시는 날에는 늘 손에 빵과 연필 모양 하드를 사 오셨었는데, 엄마 마음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오빠와 나는 그날이 너무도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대충 이 정도가 내가 한국을 떠나기 여섯 살 평생 동안 살았던 한국의 90년대 모습이었다.

어떤 장면들은 너무나도 선명한데, 그래서 혹시 내가 지어낸 상상일까 싶어 한국의 그 시절에 대해 찾아보고 부모님에게 물어도 봤었지만, 대부분 공감 해주시더라.



라떼 교포의 추억, 이정도면 당신과 나, 우리 꽤 비슷한 유아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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