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들에게 응원하는 방법은 시간을 관통해서 자기 자신을 응원하는 방식으로, 혼자서도 위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기 체계를 만들자는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외로움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형태의 고요함과 마주하면서 환기하는 자신을 마주할 수 있기에, 삶이라는 공간 안에서 자기패턴을 마주하게 되면서 자기의 존재 자체가 결국엔 혼자가 아니란 걸 인지해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이 혼자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건 아니라는걸 나도 느끼게 된다.
적막한 방엔 작은 일거리가 가득했다. 나와의 어떤 관계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그곳에 있는것 만으로도 나를 잊기 충분해 보였다. 시작하면 오늘을 전부 거기에 매몰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돈은 필요하지만 나를 확인할 길 없게 하는 적막이 호흡을 가로막는 것 같았다.
바깥으로 발을 떼는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고민이 고민을 막는 반복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옮긴 곳에서 마주하는 하나 둘 스치는 언어의 교환 속에서 불편감, 기대감, 해방감, 반가움 등 감정의 발현이 있었고, 내 삶의 시작점은 감정에서 비롯되는걸까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은 내게 동력원이었나보다. 행복만이 나를 움직이기보단 때로는 허탈한 기분까지도 나를 틀게 만드는 동력이 되고, 길의 재생산을 고민하게 하니까. 그래서 나는 발을 떼는 시도를 더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편할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더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하기 위해 얕게라도 담가볼 시도가 필요한 시점인거다. 무엇을 해야 안전할까를 나의 사방이 가려진 방 안에서 고민하기보다, 나가서 교감할 크고 작은 세상을 마주해야한다는 자기 응원이 필요했나보다.
나의 방에서는 그런 응원이 허용되지 않았다. 나를 비추는 어떤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내 머리의 열을 더 가두고 있었던 것 같다. 잠에서 덜 깬 내가 씻어야 잠이 깬다는걸 인지하고 움직이듯이, 나의 마음의 요동을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띄워 거기서 마주할 나를 기다리고, 발걸음을 차근히 옮기는 뒤따름이 있어야겠다는 작은 다짐이 있어야겠다. 거기에서 나의 답이 나올거라는 보장은 못하더라도, 내가 살아가는데 무엇이 동력되는지는 은은하게 드러나고 있더라.
불과 며칠 사이의 걱정으로 나를 고민의 열에 둘러싸게 밀어넣는 상황이 있었지만, 그 분출구로서 발걸음을 옮긴 것은 나를 확인하게 하는 소중한 나의 동력이고 나의 씨앗이었다. 그리고 고민으로 울타리 치기보다는, 열린 공간으로 나를 넣어 다채로운 상황속에서 태동하는 자기를 발견하는것이 진짜 나를 찾게 한다는 소중한 확인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민할 시간이 도착한다면, 한발짝 내딛어 감정의 환경을 마주하겠다고 나의 체계를 살짝 조정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