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이란 경험한 존재 안에서만 정의되는
한정사 같기도 하다
새로움은 긍정적인 언어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나의 과거 즉 구식이라 하더라도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신세계가 되고
아무리 새로운 것이 나온다 하더라도
익숙한 삶의 패턴 안에서는 그다지 새로울 거 없는
답습에 불과한 경우가 상당하다.
세상이 재미없어지는 이유가 거기에서 오는 듯 싶다.
이제 갓 세상을 만나는 아이에게 눈 앞의 모든것은
자기를 웃게 만드는 요소가 되지만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내게는
나를 신기하게 하고 새롭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
놀라거나 웃게 만드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는 게
지금의 모습이다
나는 더이상 새로워질 수 없는건가?
아직 나는 새로워야만 웃게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걸까.
나의 모습이 새롭든지, 받아들이는 세상이 새롭든지
어떡해야 새롭다고 볼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거기엔 세월에 따른 신선함의 민감도를
높여가야만 한다는 작은 결론이 나온다.
내가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민감한 차이와
그에 따른 감정의 수놓음과
여전히 경험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들이
나를 더 익숙함에서 벗어나 성숙한 삶의 받아들임의
새로운 형태의 인간 지향점을
갖추게 하는것은 아닐까 싶다
익숙함에 익어 벽을 만들어 지체되는것도 아닌,
그 낯섦과 직접 마주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때에
진정으로 신선함과 새로움을 이름붙여야 할 시기가 오게 되겠지.
그 파동은 삶에서 새로움에서 시작하다가
익숙함의 중심으로 갔다가
결국엔 새로움으로 다시 돌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익숙한 경로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새로움이란 중립적인 단어라고 생각이 된다
사람에 따라 웃게도 하고 벽을 만들기도 하면서
때에 따라 찾아오는 빗물과 같이 홍수처럼 작용하기도 하고
가뭄처럼 단조로움을 가져오기도 한다.
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로워진다는게
나의 부족에 비교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세상과 자기의 새로움의 균형을 찾아가라는 의미일 수도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도 새로운 것만 찾을 수는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