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나온 호흡

by 디카라떼

이번 해에는 신체적 성격적으로 나의 색상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시기가 있었다.

급하지만 조금 더 차분하고, 미묘하지만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외모들의 변화였다.


어느 날 갑자기 변해버리면 그런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은 걱정도 하곤 했는데, 마주하는 순간의 빈도가 조금씩 늘고 있다는 점에서 서서히 알아차리고 있는 것 같다.


그 변화 속에서도 걱정하고 있던 한 가지는 외모의 부분이었다. 어느 날 만난 내가 변화의 가속으로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면, 나와 상대는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까 싶은. 내가 상대에게서 받아들이겠다는 확신의 부족이, 거울에 비친 나에게도 질문하게 하는 것 같다.


길게 뻗은 장마 전선의 일부분에서 외모라는 이름으로 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 어떤 때만 해도 무척 빠르고 순간적인 그 이미지가 마치 영원할 것처럼 받아 들여졌다 가도,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빨리 변하고 영속성 없는 시기였다고 판단하기도 하는데.


여전히 오늘이 영속적인 것처럼 마음은 받아들이고 있는가 보다.


나의 관심을 끌던 사람이 있었다. 외모는 그 사람의 큰 무기였지만, 무심코 마주하는 순간들, 틈에서 드러나는 사람의 결에 대한 부분에서 주관적으로는 나의 영역 밖의 사람이라고 보고는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내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에 마음을 접어두게 된 흘러간 사건. 물론, ‘예상도’ 만으로 마음을 접는 행위들도 나의 변화 감지에 둔감한, 삶의 영속 될 것만 같은 기대감에 간절함의 부족에서 나오는 퇴보였음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외모가 1순위 일 때 대부분 칼 맞았다.' 는 기록이 있었다. 하지만 외모를 통과라도 하면 말투나 성향, 성격에서 나 또한 날 세워 쳐 내곤 한 것 같다. 외모가 삶의 동행에 얼마나 중요한 걸까. 순서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다 포기는 못하겠다는 속삭임에 비중을 다시 묻곤 한다.


미모가 나를 부르고 있다고 다가갔는데 인사도, 우연의 말 트임도 없다면? 숨결이 다르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어느 날 판단을 하게 됐다.


나는 그 호흡을 중시하는 것 같다.


‘한마디가 나오기 전, 반 호흡의 마중’


대화를 하기 좋은, 사람에 대한 태도가 매우 중요했다.


미모는 마중 나온 지 한참이라 해도 호흡이 닿지 않는 사람이라면, 말을 건다는 행위 이전에 마음 결은 드러나 있었다는 거다.


이걸 ‘오해의 소지’ 라고도 보면서도, 결의 미세한 감각이라고 포장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 은연중에 드러나는 자기편을 찾는 과정이 작지만 소중하다고 본다. 그래서 외모가 주는 느낌이 호흡과 다르면 나는 호흡에 더 신뢰를 두었었던 것 같다.


내 사람이다 싶다면 들숨에서도 느껴지는 대화의 결이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내 시선이 향하던 곳은 여태 말한 것과 다른가 보다. 여전히 허전함 속에서 자기 대화 가운데 그 미모로운 사람은 내 호흡의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중요한 건 나의 호흡의 사람이 아니었다고 포장하기보다, 내가 열번이고 더 깨어질 마음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아니었을까. 고기압이 지나고 난 후에 씻겨나간 개운함 보다 떠다니는 과거에 대한 뚫린 여운 들 만 남는 건 아닐까.


여전히 북태평양 고기압과 첨단 장비로 예보를 하면서도 그 예측이 수시로 틀려나가는 것처럼, 나의 인지적 한계로 또 한 명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존중을 멈추지 않는 6월의 기 싸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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