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자칭 놀이의 시간.
프리랜서의 특성상 명확히 언제까지 쉬게될지 알지는 못하지만
돌아보면 '며칠간이었더라' 하는만큼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갖게 되는 기간들이 있다.
오늘도 또 같은 그 기간이다. 나의 일기장을 뒤적이다보면 특히 그런 날들이 있다.
명확히 쉬자니 언제 일정이 시작될지 불확실하고, 마냥 대기하자니 마음이 심란하고.
일정이 잡혀서 동선을 만들어내는 시간이 아닌 이상은
마냥 기다리는 심리적 대기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걸 기록해둔 내역들이 있다.
이런 원인에서는 쉬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어떻게 쉴건지 그 기간을 어느정도로 정해서 내 일정을 볼것인지
눈치를 보거나, 딴 활동을 할 방법을 모르는 상태.
아니면 명확히 쉬는 기간인 것을 알면서도, 무엇을 해야 '쉼'으로 보낼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 시간을 쉼이라는 이름의 노동으로 보낸다는 문제가 있는거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가만히 있는다는게 쉰다는 의미와 같은가를 점검해보면
나에게서는 동의의 정도가 낮다는 걸 느낀다.
아마도 뭔가를 해야한다는 의식이 이미 자리잡혀서
몸을 그냥 내버려 두는 '무위'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꽤 부족한 상태인걸 직감한다.
그럼 뭘 해야 쉬는건가? 희안하게도 요즘은 뭘 시청하는데도 흥미를 많이 잃었다.
새로울 것 없는 반복적 행위들에서 마냥 마음을 내려놓기에도 편안하지가 않은가보다.
'쉬는 날이면 마냥 쉬지만 말고 나와서 다른 일이라도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으면,
안그래도 쉼을 파악하기도 전에 쉬는 날이라는 덧입힘으로 괜히 마음이 찡그러진다.
그러다 가장 나의 쉼이 되는 형태는 현재를 망각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과거의 사건을 따라가면서 생각했던 것들 들은것들 기억하는 것들에 대한 조각들을
꿰어나가는 행위,
궁극적으로 그 행위들이 내게 주는 메시지를 정리하는 거다.
기쁨과 슬픔이 그대로 대응되는 것이 아닌
나의 행복으로 이어져 가는, 꿰어져서 하나가 되는 행위들로서 해석해 나가는 과정.
그 과정을 거치다보면 어느새 지금의 내가 편안해져 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상황이 그렇다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늘의 쉼을 찾지 못하겠다면
과거에서라도 쉼을 끄집어들이겠다는 열망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물질적인 쉼도 있었다. 잠깐 블럭 수집에 집중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의 마음은 희망을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뭔가를 사두고는 언젠가 하고싶을 것 같은 날에 도움되길 바라면서.
그 희망 사기에 집중하다가 매듭을 지었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휴식이라 칭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드는 시간이었다.
대신에 희망을 구매한다는 명분은 나를 뿌듯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곤 했다.
따지고 보면 말처럼 물질 그 자체에서 얻는 만족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의 휴식이고
그 마음을 따라 몸이 쉬고 자기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이는 데 있는 것 같다.
생명력 없이 바늘에 꿰어 ‘열심히 활개치는’ 낚시 먹잇감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어렵다.
휴식이란것도 자기가 인지할 수 있을 때 쉼으로 다가올텐데.
생명이 다한 후에 영원한 쉼이 있다는 말로 위안되지는 않는다.
내 마음을 비우고 깨끗한 것으로 채우는 시간을 발견하기에 앞서
어쩌면 내 마음 어딘가에서 흐르는 감응을, 은은하게 흐르는 노력의 땀으로 착각하고는
고장난 나를 모른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잘 쉬려면,
자기를 관찰하는 내 시선이 온전 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