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를 읽고
1월과 2월 돈키호테를 읽으며 그의 모험을 따라 어느새 이상한 미친 노인이 아닌 모험을 찾아 나서는 그에게 돈며들었다. 제정신이 돌아온 돈키호테는 결국 죽는다. 괴짜의 모험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돈키호테의 결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어 허우적거리다 주말 머리를 식히기 위해 손에 쥔 책이 하필 스토너였다.
돈키호테를 읽은 여운 때문인 줄 알았다. 반 이상 읽었으나 반전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의 매력은 언제쯤 흘려줄 것인가. 지금부터 나와도 매력발산 타임이 늦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으면서 주인공 서희와 길상이 큰 분량을 차지하지 않아 놀랐듯, 또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100페이지 이상을 넘길 때까지 등장조차 하지 않아 주인공 실종 된 거 아니냐 중얼거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반면 스토너는 시종일관 스토너가 나온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사이다 같은 반전도 없고 역경을 이겨내는 영웅 같은 인물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 소설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라는 남자의 일생을 다룬 전기 같은 소설이다. 이름처럼 평범하고 묵직하고 솔직한 자칫 밋밋하기까지 한 그의 삶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별명을 붙인다면 고구마 한 솟구리 먹은 답답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인생의 지루함과 탈출구 없는 인생을 스토너라는 인물을 통해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피로하기까지 하다.
우습게도 스토너 덕에 돈키호테로 미쳐 살고자 했던 알론소 키하노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살 수 없었던 삶을 돈키호테가 보여줬다면, 스토너는 인생의 해풍을 온전히 맞으며 그 어떤 꼼수도 없이 스토너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위대한 일인지.(때론 찌질하고 처량한 것인지^^;;)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내가 이리 발발거리는 개처럼 감동에 못 이겨 헤매는 것이겠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그의 의식 가장자라에 뭔가가 모이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좀 더 생생해지려고 힘을 모으고 있었지만, 그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자신이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원한다면 그들은 무시할 수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의 것이었다. 주위가 부드러워지더니, 팔다리에 나름함이 조금씩 밀려들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이 갑작스레 강렬하게 그를 덮쳤다. 그 힘이 느껴졌다. 그는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협탁 위에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잠시 손으로 책들을 만지작거렸다. 가늘어진 손가락, 관절의 섬세한 움직임이 놀라웠다. 그 안의 힘이 느껴져서 그는 탁자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책 더미에서 손가락으로 책 한 권을 뽑아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채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그 자리에 고정시켜 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스토너의 마지막 장면이다. 주인공 스토너가 자신의 방에서 혼자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며 이 소설은 끝이 난다. 그는 죽었으나 그의 질문은 “넌 인생에, 삶에 무엇을 기대하냐?” 며 이어달리기의 바통처럼 독자에게 넘겨준다.
원체 유명해 모를 수 없는 일명 스포된 상태로 이 책을 읽었지만 내가 알던 스포들이 생각보다 빈약했음에 감사하며 책장을 덮었다. 하지만 내가 받은 이 느낌을 뭐라 글로 옮길 수 없어 며칠을 보냈다.
스토너의 부모는 가난한 살림이지만 농사에도 변화가 필요함을 알게 되어 스토너를 농과대학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대학에 입학 후 그는 교양수업으로 영문학을 듣다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전공을 바꾸고 졸업 후 고향으로 가지 않고 계속 공부를 매진하며 영문학 교수가 된다. 그리고 그의 실패한 결혼생활과 대학교 내에서도 총장, 학장 등 힘 있는 자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고지식하게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대학 내에서 훌륭한 교수로 학생들에게 좋은 교수가 된 것도, 빈부차이를 극복하고 한 결혼생활에서 부인의 보이지 않는 횡포에 휘어잡는 강한 가부장의 모습도 없다. 시간강사인 캐서린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눈 떴지만 자신의 행복만을 쫓아가는 이기적인 모습도 없다. 그가 겪는 모든 인생의 풍파에서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맨 몸 그대로 받아내며 그저 살아낼 뿐이다. 나쁜 놈이라 욕을 할 수도 없고 싸워서 이겨라 응원할 수도 없게 만들면서 그의 생을 따라 계속 읽어 나가게 된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스토너와 대치되는 인물들 (이디스, 로맥스, 워커)을 통해 상대가 악인이기보다 스토너의 인생관이나 그의 가치관을 상대적으로 더 빛나게 했고, 그를 교수로 이끌었던 아처 슬론 교수와 우정을 나눴던 친구 매스터스와 고든, 진정한 연인 캐서린은 그의 삶의 풍성하게 했다. 돌아 생각하면 인생에서 나의 적들이 되는 그렇게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엮인 삶마저 흑과 백처럼 선과 악, 옮음과 그름으로 나뉘어 보는 것이 아닌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의 삶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 것이 내게는 큰 울림을 던졌다. 비범함이 아니라도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연민이 생기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아마 내가 느낀 감정이 그런 것이지 싶다. 슬픔보다는 연민, 평범한 삶을 사는 나에 대한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그러한 마음이 스토너를 읽고 한 동안 나를 꼼짝 못 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3월 1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183화 ‘천재와 싸워 이기는 법’ 특집에서는 역도황제 장미란편을 봤다. 인생과 역도의 닮은 점에 대해 묻는 질문에 “무게를 견디면서 사는 것”이라고 대답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랬다. 왕관을 쓴 자만이 그 무게를 견디며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자신만의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고 있는 것이다. 돈키호테도 스토너도 나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