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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독가의 서재 Feb 09. 2023

전업주부라는 이름의 불안감

나로 살아간다는 것 

“저는 김선경입니다. ” 


달랑 한 줄, 줌을 통해 화상모임을 하는 첫 시간, 자기소개의 시간 내가 뱉은 한 줄이다. 


코로나로 온라인 모임이 많아지면서 거리, 시간적으로 불가했던 다양한 모임을 집에서도 신청하며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여기저기 욕심이상으로 듣고 싶은 걸 다 신청하며 마치 대학생 시간표 마냥 꽉 찬 스케줄을 채워 가고 있는 나에게 제동이 걸렸다.  바로 자기소개 시간 때문이었다.  


퇴사를 고민 고민하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물었던 2가지 질문이 있다. 첫 번째,  ‘항공정비사’라는 직업 꼬리표를 떼고 살 수 있는지.  두 번째,  퇴사에 대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숱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첫 모임 자기소개 시간에서야 나의 퇴사를 실감했다. 18년 항공정비사라는 직업이 알고 보니 나의 든든한 갑옷이었고 무기였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직업이 없는 40대 아줌마가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순간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다.  명함을 내밀며 비즈니스 관계만 이어오다 이렇게 내 몸 하나만 덜렁 있는 공간에서 나를 소개할 말이 뭐가 있는지. 앞서 소개한 몇몇의 전업주부들은 공식이 있는 마냥 거주지와 ‘몇 살 아이를 몇 명 키우는’ 수식어로 시작을 했다. 순간 갈등에 쌓였다. 나도 동일한 패턴으로 해야 하는 건가? 싫었다. 결국 내 이름 한 줄만 이야기하며 이 모임에 기대하는 부분을 덧붙이며 소개를 끝냈다. 


수업에 집중도 못하고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전업주부, 백수, 경단녀 단어들에 집착하며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골몰하게 된 것이다. 직업란에 나는 전업주부라고 적는 게 맞는 건가? 전업주부가 직업명인가? 맞벌이는 주부가 아닌가? 전업주부는 그냥 주부와 다른가? 전업주부가 직업이라면 업무범위가 명확한가? 노동시간은? 계속 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스스로를 계속 자문을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단순한데 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한동안은 백수라 했다가 또 어떤 때는 예비 경단녀라고 끼어 넣어 보기도 하며 자꾸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려고만 했다. 지금에서야 속을 드러낸다면 스스로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회사를 다닐 때는 전업주부의 삶이 부럽고 회사와 가정에 양분화되어 소모되는 삶보다 가정에 몰입할 수 있는 모습이 진심으로 복 받은 여자들에게 허용되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래서 내 일을 좋아했지만 일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맞벌이를 하는 나의 삶이 마치 형벌처럼 무거운 짐 마냥 느껴지던 날도 있었는데 말이다. 퇴사하며 여자 선후배들에게 “나 이제 전업주부야!” 하며 자신 있게 이야기했고 그들은 부러움을 담은 시선을 보냈는데, 정말 이상했다. 왜 전업주부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건지 이 불안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퇴사 후 1년, 2년,...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불안감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바로 실적이 없었던 것이다. 40대쯤 되면 뭔가 이뤄지고 경력이 쌓여 전문가의 모습을 기대한다. 아니면 전업주부로 있다 아이들이 적당히 고학년이 되면 다시 사회로 나오는 보통의 현상과 나는 반대로 하고 있었다. 준 전문가였던 일을 버리고 적당히 고학년이 된 아이들이 있는 가정으로 돌아간 것이다. 전업주부라는 초보딱지를 붙여가며 말이다. 나의 경력이 없으니 내가 사는 곳, 자녀의 성취도가 곧 내가 되기에 왜 이렇게 우리나라가 부동산과 자녀 교육에 열이 오르는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퇴사 전의 나는 명함 한 장이면 이미 충만했는데 전업주부는 순수한 내가 아닌 사는 곳과 자녀가 수식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뤄놓은 건 내려놓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 저는 산초로 태어났으니 산초로 죽을 생각입니다요"
  

돈키호테의 한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기사소설에 미쳐 세상을 모험하는 돈키호테를 따라 바보스럽다가도 현실적인 모습을 보이는 종자였던 산초 판사. 돈키호테가 자기와 함께 모험을 떠나면 추후에 섬을 다스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믿으며, 통치자가 되고 나면 사람이 변할 것 같다는 말에 산초가 던진 말이다. 그는 끝까지 자기로 살다 자기로 죽겠다고 말한다. 그랬다. 내가 놓친 건 항공정비사도 전업주부도 아니었다. 그냥 나를 자꾸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냥 나로 살겠다고 퇴사를 하고선 퇴사 후에도 뭔가 되겠다고 혹은 그 뭔가가 없어 자꾸 나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씩 두려움의 실체를 깨닫고 나니 내 사고를 확장시킬 방법 외에는 불안감을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은 자기소개시간이 와도 조금은 주춤하지만 이렇게 말한다. “ 전업주부 X연차 김선경입니다.”하고. 얼마나 영악한가... 과거의 경력이 있었던 듯, 일을 하다 전업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그래도 표 내고 싶어 하는 미련이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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