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지향을 하고 나서 가장 편해진 것은 레시피에 대한 탈출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뭘 해 먹고 사느냐고 질문하곤 할 때 그때그때마다 정말 잘해 먹는데 공감대를 이룰 명칭이 없어 설명하기 어려운 것만 빼면 말이다. 그러다 보니 별거 없는 음식을 할 때도 나도 모르게 원초적일지라도 사용한 식재료를 이용해 오늘 음식의 이름을 만들어 주곤 한다.
요즘 내가 푹 빠진 식자재는 새송이버섯과 대파 그리고 두반장, 땅콩버터이다.
대파는 우리나라 요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어 4계절 내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파의 제철은 9월부터 12월(가을부터 겨울)이다. 제철이 의미 없는 채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 대파는 흰 대부분이 길게 나고 잎이 적어 단맛이 증가하고 식감이 부드럽고 향이 짙은 것이 특징이다. 비건지향 이전에는 대파를 주로 국, 탕, 찌개, 조림, 볶음등의 부재료로만 활용했는데 요즘은 대파를 주재료로 한 요리를 종종 해 먹고 있다. 논비건 식구들이 국 혹은 조림에서 파만 쏙쏙 골라낼 때는 어찌나 아까운지. 별거 아닌데 먹는 음식세계가 바뀌어도 주와 부와 바뀌는 건 한 순간이 된다. ^^
버섯은 원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지라 지금도 큰 거부감이 없다. 다만 버섯 중 표고나 팽이버섯을 음식에서 많이 활용하고 먹었었는데 비건지향 후 달라진 것은 새송이 버섯에 대한 애정이 부쩍 커졌다는 것이다. 식감도 좋고 다른 버섯에 비해 비타민 C 함량이 높고 대부분의 버섯에는 거의 없는 비타민 B6 등 영양측면에서도 아주 우수한 편이라고 한다.
여기에 최근 빠져 있는 두 가지 소스, 두반장과 땅콩버터를 이용해 한 그릇음식인 덮밥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 레시피라고 하기 보다는 간단한 요리 순서다.
1. 새송이와 대파를 준비한다. 크기는 모두 본인 취향대로 자르면 된다. 칼로 썰어도 되고 손으로 길쭉길쭉 찢어도 된다.
2. 스테인리스 팬에 불을 가하고 약불에서 바로 현미유를 두른다.
3. 대파의 흰 부분을 넣어 기름에 대파향이 베이도록 한다.
4. 적당히 대파향이 베이면 썰어둔 새송이버섯을 볶는다.
5. 숨이 적당히 죽었다 싶을 때쯤 채 썰어둔 대파를 넣고 함께 볶는다.
6. 이때 연두를 한 바퀴 휘둘러 준다. 두반장 2큰술, 땅콩버터 1큰술을 넣어 버섯과 대파에 양념이 베이도록 한다.
7. 넓은 접시에 담긴 밥 위에 올려준다.
8. 깨와 참기름은 기호도에 따라, 먹기 전 뿌려주면 된다.
맛을 좀 더 올리려고 한다면 연두보다는 굴소스를 땅콩버터보다는 설탕이나 올리고당 등을 사용하면 더 많이 좋을 듯했다. 논비건식구들에게 줄 때는 약간의 소스재료는 변형이 필요하므로 늘 내 호기심대로 요리하고 난 뒤에는 약간의 수정사항을 잠시 생각하는 것까지 마무리 사항에 해당된다.
그때 그때 집에있는 식재료를 이용해 즉흥적으로 만들어 먹다 보니 같은 음식이라도 늘 새로운 맛이 난다는 게 함정이지만 아직까지는 레시피 검색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해 먹을 수 있는 매일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