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사회 비판
당신의 부엌 서랍 어딘가에 손이 잘 닿지 않는 물건을 떠올려보자.
나는 대체 이것을 어쩌다가 산 것일까. 정말 내가 원해서 산 것일까?하고 의심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정말로 무언가가 ‘필요해서’ 산 것일까?
우리는 필요 이상의 것을 원한다. 그 후 결핍에 휩싸인다. 필요한 것을 얻고 나면 만족해야 하지만 필요한 것을 얻게 되는 순간 알게 된다. 실제로는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었을까. 고민해보는 순간 딱 생각나는 게 있다. 그러나 그걸 얻는 순간 다른 게 얻고 싶어진다. 왜 욕망은 끊임없이 방향을 바꿀까. 얻고 나면 왜 바로 다른 것을 원하게 되는가.
보드리야르는 ‘소비 사회’라 규정짓는다. 우리는 어떤 기호를 소비하느냐에 따라 정의 내릴 수 있다. 그는 기호 가치로 사물을 소비한다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물건의 가치는 쓰임새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이 소비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면 당신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느 정도의 소득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잘 살고 못 사는지를 대략 알 수 있다. 반론하고 싶어질 수 있다. 차만 좋은 카푸어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좋은 차가 있어도 실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카푸어는 소비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다. 교통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차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고, 행복하게 사는지를 알리기 위해 혹은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좋은 차를 구입하여 소비하였다는 사실이 이 사회를 소비사회로 만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더 이상 필요해서 원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추상적이다. 모든 사물은 형태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색깔, 맛, 소리, 냄새, 촉감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형태는 아름답고 부드럽고 향기롭다. 기능은 편의성과 유용함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미지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형태도 아니고, 기능도 아니다. 본래 우리는 기능과 형태로 사물을 인식한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브랜드로 인식한다. 브랜드는 사물의 가치를 덧씌우는 역할을 한다. 기능이 동일하더라도 브랜드에 따라 상품 가치가 달라진다. 대중은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선택한다. 브랜드는 이미지를 올리기 위해 여러 전략을 사용한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선택과 선망을 통해 가치가 결정된다. 때때로 선택을 너무 많이 받지 않기 위해 가격을 올려 진입 장벽을 올리도록 만든다. 의도적인 가격 상승으로 과시욕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2024년에는 MZ 명품 소비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였다. 명품 소비가 이루어진 것에 대한 원인은 다양하게 내놓았지만 SNS와 미디어가 젊은 세대의 ‘플렉스’를 부추긴 건 사실이다. 플렉스를 누리지 못하는 젊은 세대는 소외감을 느끼고 수저를 탓하게 된다. ‘남들’이라고 부르는 정의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존재하는 이들로 과시욕을 충만하면서 댓글의 칭찬으로 자라나는 타자들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책이 있듯이 SNS에는 그들이 어떤 노력을 통하여 얻게 되었는지 혹은 얻은 후에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불행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유튜브나 SNS는 소비를 통한 즐거움과 행복을 보여준다. 그 이미지는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은 곧 행복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다. 노동으로 인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아무리 벌어도 소비하거나 소유할 엄두가 나지 않는 이들은 그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소외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구조가 형성된다. 그들은 소비를 통해 커뮨티를 활성화한다. 명품과 과시할 수 있는 물품을 소유한 이들에게 브랜드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눌 때 가지지 못한 이들은 이야기할 수 없다. 또래 집단과 문화에 민감한 젊은 세대는 자신이 소외되는 것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그들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2025년에 트렌드는 여행이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과 경험을 제공하며 마치 성장을 가져다줄 것처럼 이야기한다. 명품은 자기 성장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행복을 가져다줄 것처럼 말해놓고는 이제와서 그건 소비자의 착각이었다는 걸 알려준다. 여행은 성장을 가져다주고 경험을 통해 자산을 쌓아둘 것처럼 말한다. 새로운 음식, 새로운 문화, 새로운 공간이 형성하는 인간의 성장 욕구를 자극시킨다. 명품은 행복에 대한 소외를 낳았다면 여행은 성장에 대한 소외를 낳는다. 물론 명품을 사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는 건 성립하지 않듯 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성장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인간이 성장하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점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시장은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잠시 가려버린다. 마치 여행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못한 경험을 하게 되고, 성장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인식을 주게 된다. 성장조차 계급화된 소비 콘텐츠가 주가 된다. 성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누군가는 섬세한 장인 정신을 이야기할 수 있고, 실패한 과정 그 자체가 하나의 성장으로 말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성공한 결과물과 성패만을 성장이라 이야기한다. 패배한 이들은 성장하지 못하였단 이야기를 한다. 성장하지 못한 이들, 여행 경험조차 누리지 못한 이들에게 결핍을 안겨준다.
결핍은 우리를 발전시키기도 한다. 또한 결핍은 이제 더 이상 채워야 할 구멍이 아니라 만들어야 할 트렌드가 되었다. 어떤 결핍을 소망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결정된다. 갈망이 커질수록 인간은 노력한다. 물론 그 노력이 반드시 성취를 가져다 주거나 얻어낸다는 보장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간절함이 인간을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시장은 이러한 간절함과 결핍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여 마케팅과 바이럴로 이끌어낸다. 소외감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생존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내적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수양을 쌓는 게 아니라 외부적 요인으로 결핍이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결핍은 스스로를 낮추게 만든다. 제대로 된 명품 하나 소유하지 못한 자, 해외 여행이라고는 꿈꾸지 못하는 소비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남들보다 못한 행복과 남들에게 뒤처진 성장을 의미한다.
사람은 ‘나’를 정의내리고 싶어하고 규정짓고 싶어한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할 수 있도록 해야 안정감과 소속감이 든다. 하다못해 사소한 결정까지도 나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어느 한 쪽을 택해서라도 나를 규정하고 싶어한다. 성격 검사나 직업뿐만 아니라 소비 자체도 나를 규정한다. 아이폰이냐, 안드로이드냐에 따라 문화 취향이 구분되기도 한다. 누가 결정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미지가 특정 인물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서 혹은 그를 의식하지 않는 듯 행동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미지를 특정인이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절할 수 없고 규제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나타낼 수 있는 방식은 소비 외에 정말로 없는 것일까? 성장과 경험, 행복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반드시 돈이 근본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열정을 바쳐 무언가를 해낸 성과물이 있다면 비록 재료비나 인건비가 들었다고 한들, 그것의 본질은 돈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소비한다는 것과 소비가 본질이 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성장하고 완전한 ‘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소비 사회를 넘어 ‘나’가 될 수 있기 위한 조건과 전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결국 우리가 잃어버린 건 사물이 아니라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다른 언어다. 소비가 아니라 다른 언어, 그것이 무엇인지는 당신이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