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 프롬 저)
1941년. 독일에서 나치스가 발흥하던 시기였다. 이 해에 발간된 책에서 에리히 프롬은 독일 국민들이 독재자 히틀러와 나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이유를 사회심리학적 논리로 분석한다.
당시 미국과 유럽의 개인들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부문을 포함하여 곳곳에서 그간의 권위주의와 속박으로부터 탈출하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반면 독일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여론을 대표하는 나치스를 통해 다시 파시즘으로 회귀했다. 에리히 프롬은 다른 국가들이 개인의 완전한 해방을 외치며 그들의 권리를 신장해가는 동안 독일은 어째서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독재 체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증대되는 고독에서 벗어나 구속을 통해 안정감을 얻으려는 인간의 심리라고 밝혔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근대인은 경제적 발전에 따라 전통적 권위에서 해방되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견딜 수 없는 고독에 빠지게 되었다. 근대적 산업체제는 개인을 발전시키고, 삶에서 개인의 독립과 자율 및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급격한 개인 자유의 증대는 오히려 개인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는데, 구시대의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전통적인 속박과 규제에서 풀려남으로써 사람들은 불안과 무력의 감정에 지배받게 되었다. 고립감과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이 사람들의 내면에 엄습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인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는데, 하나는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새로운 의존과 종속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독자성과 자발성에 기초하여 새로운 자유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개인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하는 실제 양상은 어떤가. 먼저 종교개혁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을 완전히 버림으로써 신에게 종속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후에는 나치스라는 독재 집단에 동의(혹은 방관)함으로써 그 속에서 안정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 번째로 거대한 사회의 완벽한 일부분이 되고자 하는, 즉 사회의 충실한 톱니바퀴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모두 개인의 독자성과 자발성이 주는 자유 대신, 거대한 세계의 완벽한 일원이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안정을 갈구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것은 일종의 노력으로, 자아의 고독을 극복하고 삶의 허무 대신 확신을 갖기 위해서 세계와 분리되지 않는 공고한 연결을 획득하려는 시도이다.
사람들은 외부에 있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데 열중한 나머지 ‘내부에 있는’ 속박과 강제, 그리고 두려움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쌓아 올린 물질적 부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획득했음에도 다시 파시즘으로 회귀했던 독일 국민들을 보면 그렇다. 자신들의 내부에 갑자기 늘어난 독자성과 자발성을 견디지 못하고 억압과 구속을 주는 집단에 스스로 속하기를 선택하였다. 즉 독일의 나치스는 비록 자신의 자유가 완전히 억압되더라도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자유로부터의 도피' 대신 완전한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리히 프롬은 '사랑'과 '일'을 통해 독자성과 개인성을 발휘하며 진정한 자유를 희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발성을 보존하면서도 외부의 세계와 안정적인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이 주장이 여전히 유효한지 묻는다면, 많은 조건이 달리겠지만 역시 통찰력 있는 주장임은 분명하다고 답할 것이다. 비록 우리가 온전히 자유의지로 일하고 사랑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선택지가 주어지는 항목이 있다면 결국 '사랑'과 '일'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