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유복렬 저)
외교관 유복렬,
의궤 반환 협상의 숨겨진 뒷얘기를 풀어내다
2011년 8월, 우리는 그간 답보상태에 있던 외규장각 의궤 반환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순간을 목도했다. 비록 완전한 양도가 아닌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5년마다 대여 계약을 갱신하는 조건이었지만, 140여년 간 프랑스에 머물러 있던 우리의 문화 유산이 우리 땅으로 되돌아온다는 자체가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김영삼 정부 당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한국과의 TGV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의궤 반환을 추진했지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었다. 앞서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두 권의 의궤를 함께 가지고 온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권을 자의적으로 한국에 기증한 일 때문이었다. 본래 한국 대통령에게 잠시 보여주겠다는 명목으로 도서관의 반대를 무릅쓰고 꺼내온 것이었기에, 이 사건이 있은 이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엄청난 압박은 물론이고 여론의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결국 대통령의 예기치 못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차후 행정적 절차를 밟아 영구 대여의 형식을 취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의궤 반환 문제는 프랑스와 한국 간의 외교적 관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어 왔다.
G20 정삼회담을 앞두고 목엣가시처럼 걸려 있었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모두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였다. 그간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의궤 전부를 양도받는 형식을 고수해 온 데 비해, 프랑스 국립 도서관은 프랑스 국내법의 규정에 의해 윤리적 차원에서 유골 두 구를 반환한 예외적 경우 이외에는 '대여와 교류'의 원칙에 따라 의궤와 동일한 양과 질의 가치를 가진 다른 유산으로 교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론나지 않는 줄다리기 싸움이 20년 간 이어졌던 이유는 프랑스 국내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프랑스 내 여론 또한 만만치 않은 걸림돌이 되어 왔다.
마지막으로 박 대사는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문화재를 맞교환한다는 생각 자체를 우리 국민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가를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의궤를 돌려주고 대신 한국 국민들의 영원한 사의(謝意)를 선물로 받으십시오. 그것이야말로 미래 양국 관계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프랑스 측 인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본문 122쪽)
결국 우리나라는 의궤를 돌려받는 실익을 챙기되, 프랑스 국내법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살리기 위해 영구 대여의 형식으로 의궤를 반환받기로 결정한다. Win-Win 결정이었다는 평도 있었지만, 프랑스 내에서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한국의 경제력이 무서워 의궤를 갖다바친' 행위라고 비난 여론이 들끓었으며, 문화계의 수많은 저명 인사들은 서명과 인터뷰를 통해 의궤 반환을 비판했다. 우리나라 내에서는 "주인이 자기 것을 돌려받는데 '대여'가 말이 되는가" 하는 비판이 계속됐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실익 만큼이나 명분도 중요했기 때문인데, 자칫 앞으로 국외 무단 방출된, 탈취당한 문화 유산을 양도받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결정이었다.
저자 유복렬은 이 책에서 외규장각 의궤가 우리나라로 돌아온 지금, 오랜 시간 그 일은 맡았던 실무자로써 외교 현장에서 겪었던 수많은 위협적인 사건들, 좌절과 슬픔, 그리고 그 가운데 '적이자 동지'였던 프랑스 관계자와의 소중했던 인연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외규장각 의궤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한 이후, 145년 간 프랑스 내에서 돌고 돌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기까지의 배경을 서술했다. 박병선 박사에 의해 도서관 한구석에서 발견된 외규장각 의궤의 기구한 운명과 이를 돌려받기 위한 20여년의 다사다난한 뒷얘기가 이어지며 그 가운데 프랑스와 튀니지를 오가며 겪었던 외교관으로서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담았다.
그동안 의궤 반환 협상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있었다. 그 치열한 현장에 있었던 외교관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국가간 협상의 뒷얘기들과 문화재 반환이라는 흥미로운 외교 교섭의 과정을 알아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