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리다 글프03] 재미란 무엇인가

2025. 1. 5. 10:10

by 가보리다


1.



갑자기 웬 '재미란 무엇인가?'
어느날 갑자기,
가보리다가 글쓰기 제목 55개를 포스팅했을 때, 이웃분들을 대체로 ‘깜놀’하셨습니다.

파워 J인가보다. 무척 계획적인가 보다 하는 추측과 달리, 가보리다는 그냥 내키는대로 사는 대문자 P입니다.
(심지어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어때서? 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등장한 제목 55개는 그저, ‘재미있게 글을 쓰자’ 라는 저의 다짐 정도로 봐 주셔요.

습자지처럼 얇은 저의 지적 능력으로는,
여러분께 좋은 정보를 드리는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감수성 넘치는 글을 쓸 어휘력도 안되구요.
( 어차피제 블로그에 방문하시는 분들의 대다수는, 그저 가보리다와의 이웃 인연으로 오신 답방이실테니, 이왕이면 재미있는 글을 대접해드리고 싶은 정성?쯤으로 봐 주셔요.)


2.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어서거든요.
이왕이면 읽는 분들도 재미있어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뭘까요?
저는 봉준호감독의 기생충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고 나서, 그가 높인 한국의 의 위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즐거웠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숏폼보기, 챌린지 따라하기도 재미있지만, 저는 욕이 절로 나오는 일반인 관찰 예능 (이혼숙려캠프나 금쪽 같은 내새끼)을 보면서 자기 반성을 하는 편을 더 좋아합니다.
영화, 음악, 미술작품 같은 예술들은 감히 창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주로 시청하는 편이고,
글을 쓰는 것도 예술이라고 본다면,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손꼬락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환경을 찾아 여행가는 것도, 세로토닌 듬뿍 산에서 명상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입니다.

재미에 대해 규정하려니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네요. 흠..생각보다 어려운 주제였나봐요.



3.


재미의 사회학이라는 책에서,
재미란 사회적 현상으로 사회적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였죠.
즉, 재미란, 특정한 행위가 아니라 사회 관계 구성의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은 둘째딸에게 ‘귀여워’라고 말하는 것을 재미있어 합니다. 그녀가 진짜 귀여운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에요.
큰딸이 ‘예똥이귀여워~’라고 부르면, 엄마인 저도, 아빠인 누릉지조아씨도 '예똥이귀여워'를 따라합니다.
그러면, 예똥이가 ‘난 안귀여워!’ 하고 토라지거든요? 그 때 온 가족이 예똥이에게 가서 안아줍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 가족들은 ‘예똥이'라고만 해도 ‘귀여워’가 자동반사로 나올만큼 재미있어해요..
이 것은 가보리다 훼밀리만이 느낄 수 있는 유대감의 표현이자, 놀이입니다.

재미가 사회적놀이라는 또 다른 예시로는, 블로그 댓글놀이가 있겠군요.
우리도 이웃 블로그에 놀러가면 다른 분들의 댓글들도 쭈욱 읽고, 괜히 아는척 하고, 주인장의 반응을 기다리다리잖아요.
저도 블로그에 제 일기만 배설할 때는 몰랐어요. 그 연대감을.
그 공감대가 형성되고 난 뒤엔, 블로그가 훨씬 재미있어졌음을 고백합니다.


4.


큰딸에게 물어봤습니다.
"너는 어떤 것이 재미있니?"

저는 당연히, 전전두엽이 재공사중인 사춘기소녀에게 나올 법한 대답을 예상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볼 때나 도파민 가득 유튜브를 볼 때, 또는, 또래 친구들과 수다 떨 때 같은 답이요.

“난 세상 모든 것이 재미있어”​
엄마에게 질문 받기를 좋아하는 큰딸이 눈망울을 초롱거리며 대답했습니다.

“난 내가 이 세상에 혼자 떨어져 있다하더라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우와! 나 혼자 있으니까 이런기분이구나! 처절한 외로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 손가락과 발가락은 이렇게 닮았구나…하면서 말이야”

의외였습니다.
앞서 책에선, 재미란 ‘사회적 놀이’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했는데,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있어도 재미있을 수 있다니요!

이런..제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5.


그래서 이번엔 남편, 누룽지조아씨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황당한 답을 들었습니다.


“난 다 재미있고 재미없는 것도 구분이 없어. 그냥 모든 것에 감사해.
현재에 몰입하는 거거든. 굳이 재미있는 것 없는 것을 나누어 판단하지 않아.
나는 지금 이 현재가 완벽하거든. 그래서 불만이 없어. 그냥 매 순간 집중하는 거야.
그런데 그 말은 즉, 매 순간 집중하지 않는다 라는 말과 똑 같아.
그냥 현재에 집중하면서 사는 거야”



6.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시나요?
그래서 재미있는 게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라고 되 물었지요.
이 아저씨, 칸트처럼 재미없는 사람인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대답은 똑바로 해줘야지요.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빨강이나, 파랑이나 다 같은 가시광선이며,
빨강과 파랑의 구분은 단지, 우리의 뇌가 빛의 파장 차이를 그렇게 인지하는 것일 뿐이다..’
...같은 코끼리 뒷다리 긁는 대답을 하고 있으니 답답했습니다.

그때 큰딸이 끼어들었어요.


“엄마!
아빠가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라서 그래.
아빠는 목표에 집중할 때 재미를 느끼시는 거야.
지금 아빠의 목표는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려야 하는 책임감’이라서 ‘안정’에 몰입하시는 거야."



7.


몰입!

제가 놓치고 있었던 것을 찾았습니다.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 있어도, 발가락과 손가락을 관찰하며 재미있을 수 있다는 딸과,
재미있는 것을 왜 찾아? 하며 그저 현실에 감사하며 살 뿐이라는 남편의 공통점이요.

우리는 몰입할 때 재미를 느낍니다. 그래서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도 재미를 느끼며, 슬픈 영화를 볼 때도 재미를 느끼던 것이었죠.
저 역시 몰입하며 재미를 느끼고 있던 것이었어요.

이 재미는 이웃분들과 나누는 댓글놀이와는 달랐습니다.

혼자 이 문장 저 문장 연결 시켜가며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저 멀리 저만의 몰입우주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마치 픽사의 Soul의 그 Zone, physical과 soul 사이에 있는 그 무아지경 속의 그 Zone에 있는 것 같이요. 그건 제가 글을 쓰는 것을 그만큼 즐긴다는 뜻이겠지요.

세상 모든 것이 재미있다는 큰딸과, 세상엔 재미있는것과 재미없는 것의 구분이 없다라고 말하는 남편.

이 둘은, 양쪽 끝에 있어 서로를 이해 못할 것 같아 보였지만,

결국 그 둘이 말하는 바는 같았습니다.

그저 새롭게 몰입하라!


지루하게 선명 하기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롭게 you have to cha cha cha change yourself!

w.whale의 R.P.G. shine 중에서



8.


그리하여, 재미가 ‘자신과 관계된 사회적 놀이’와 ‘몰입’ 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글을 마치려니

별로 재미없는 결말이 될 것 같군요.

특단의 조치로 누룽지조아님의 특징이나 까발리고 사라지겠습니다.

누룽지조아님은 진짜 재미라곤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아저씨는 작년에 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심도 깊은 해석을 적어서 브런치 작가에 등단하셨습니다.

아마 도덕경 문구 해석에 대하여는 웬만한 학자들 뺨칠 정도일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그 말이 다 그 말 같은 뻔한 말들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몰입해서 공부했고, 그 덕분에 자신의 성격이 감성적이고 개방적으로 변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늘 자신이 섬세하고 예민한 ENFP라고 주장하는데, 저와 딸들의 의견은 다릅니다.

냉철하고, 시간 약속을 매우 중요시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언제나 한결같이 재미가 없는 사람인 누릉지조아님.



E보다 재미없는 I, N부다 재미없는 S,
F보다 재미없는 T, P보다 재미없는 J
궁극의 재미없음의 결정체 ISTJ인 누룽지조아님께 드리는 말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난 당신의 브런치에 구독자가 있다는 게 늘 신기했거든?
하지만 당신은 회계사들 중에선 제일 재미있는 사람일 꺼야.
일단 회계사가 재무재표 대신에 자신이 쓴 도덕경 책을 들고 다니는 것 부터가 범상치 않잖아?
이 자리를 빌려서 사과할께.

당신… 꽤… 재미있는 회계사인건 인정해.​



From 회계사가 뮈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결혼했던 가보리다



텅빈 거리에서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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