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리다 글프04] 10시 10분에 글을 올리는 이유

2025. 1. 6. 10:10

by 가보리다

1.


오전 10시 10분
평상시라면 아이들 아침밥 먹이고, 설거지하고 한숨 돌릴 시간입니다. 그런데 겨울방학이라, 예전처럼 한숨을 돌리진 못합니다.
제 자녀 둘은 고3, 중3이 되었습니다.
이 겨울방학은, 그녀들의 학습계획에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큰딸은 이제부터 이투스247 윈터스쿨 다니겠다고 했는데, 착실하게 지킬 지 마냥 걱정스럽습니다.

제가 예전만큼 이웃집 방문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한다고 애들이 딱히 공부하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할 예정이거든요.
그래도 매일 10시 10분에 글을 올리겠다고 공약을 걸었으니, 일단 휴대폰에 10시 10분 알람을 만들어줍니다.

저녁 10시10분
둘째의 학원이 10시에 끝나서 집에 돌아오면 10시25분정도 됩니다. 저녁밥을 먹고 치운 8시나 9시쯤이면 늘 피곤이 몰려옵니다. 몽롱한 정신이라 책이나 이웃님들 글도 잘 읽히지가 않아요.그럼에도 억지로 깨어있으려고 TV 앞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OTT에서 뭐 볼 것 없나 고민하다가 늘 보던 실화탐사대, 꼬꼬무를 보다가 꾸벅 꾸벅 좁니다.
그래도 늘 아이들이 모두 집에 돌아올 때까지 거실에서 기다립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방에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저의 하루 일과가 끝납니다.
거실의 불을 끄고 제 방으로 퇴근합니다.



2.


그런데 갑자기 왜 10시 10분인가 싶으셨죠?

10시10분이란 단어가 제 뇌리에 박힌 것은 12년전 입니다.
2012년 무한도전이 한참 재미있었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무한도전의 광팬이었습니다. 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으로 황소와 줄다리기 하던 시절부터 좋아했습니다.

2012년 가을 어느날, 무한도전 했던 ‘못친소 페스티벌’을 기억하시나요? 거기서 노홍철이 초대F1이 되었지요. ( 그 전에 미남이시네요에서 무한도전 최고미남으로 뽑혔었다는 것이 특히 웃음 포인트였습니다.)

그들의 자학개그에 그냥 생각 없이 웃고 있을 때, 유치원생 큰딸이 갑자기 그러더군요.


"어? 저 남자 잘생겼다!"
어?

저 중에 잘 생긴 사람이 있다고? 저 중에?

출처 네이버


그녀가 지목한 사람은 바로 김범수였습니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주장하더군요. 저 얼굴이 어째서 못생긴 것인지 이해할 수없다고요.

그땐.. 그냥 그녀가 참 착한 어린아이여서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제 딸이 박애주의자라고 믿으며 그냥 흘려넘겼습니다.


3.


TV 예능 도파민 중독자 가보리다는 탈출, 추리예능도 좋아합니다.
크라임씬, 더 지니어스 같이, 다음 장면이 어떻게 흘러갈 지 예측할 수 없는 예능들이요.

2018년, TVN에서는 강호동과 신동, 유병재, 김종민등이 출연한 탈출 예능, 대탈출이 방영했습니다. 더 지니어스의 정종연PD 작품이라는 이유로 저는 본방시청을 했지요.


“어! 저 남자 잘 생기지 않았어?”


그녀, 저의 첫째딸이 또 누군가를 지목했습니다

출처 네이버


아… 초등학교 5학년이면 이제 다 알꺼 아는 나이잖아요.


잘생겼다고? 김동현이?



그녀는 심지어 '정우성이 뭐가 잘생긴 건지 모르겠어!'라는 말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때부터는 그녀의 ‘잘생김’에 대하여 조금씩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4.


그녀 중학교3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에게 고백하는 남학생들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키번호 1번을 놓지 않던 그녀는, 중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부쩍 키가 컸고, 치아 교정으로 저주받은 하관을 재정비하고나니, 나름 미녀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들어보면 한결같이 착하고 모범생이었던 그들이 큰딸에게 퇴짜맞은 이유를 그땐 몰랐습니다. 그냥, 아직 이성에게 딱히 관심이 없어서 그려려니 하고 넘겼지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던 지난해 가을, 어느 소년을 만난 이후로 그녀가 달라졌습니다.


5.


그녀가 남자친구 후보로 두었던 그 소년은 지난 5월 AI코딩대회 준비를 위해 어느 카페에 가입했다가 알게 되어, 서로 카톡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소년은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어서 큰딸과 실제로 만나 본 적은 없지만, 큰딸에 의하면, 이 정도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만나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 무렵 그녀는 다들 칭송하는 하이틴 로맨스를 직접 겪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대로 말이 잘 통하는 그 소년을 염두 해 두는 듯 했습니다.



“엄마! 나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면 돼. 생긴 것은 상관없어.

왜냐하면, 나는 아무리 못생긴 사람이라도 잘생겨 보이게 스스로 최면 거는 방법을 알거든.

어떤 사람이든지 좋은 면이 하나쯤은 있어. 그 점 하나만 찾으면 돼.

나에게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 나에겐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이 중요해.”



여러분이 고2 수험생 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공부나 해’ 라고 무시하실 건가요?

아니면,

‘너 혹시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니? 그게 혹시 그 인터넷에서 만난 아이니?’

라고 불안해 하실 건가요?



저는 그저 나긋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응. 그건 니가 아직 네 짝을 못만나서 하는 말이야.

사랑이란 머리로 하는 게 아니거든. 교통사고 같은 거라서, 네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내면이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외모 커트라인을 통과한 이후 문제일걸?”



그녀는 제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어코 그 소년과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서로 사진교환도 했지요.



6.


"엄마…

엄마 말이 맞는 거 같아.

그 남자애 말이야… 말이 진짜 잘통하는데, 정말 사귀고 싶었는데… 사진보니까 호감이 떨어졌어."


푸하하하하

제가 굳이 나서서 뭐라 할 일도 없었습니다.

큰딸은 스스로 그 남자애가 왜 자신의 연애 대상이 안되는 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나봅니다.



“엄마.. 나는 좀 남자다운 남자를 좋아하나봐. 그 남자애는.. 뭐랄까 너무 착하게 생겼어.”



10시10분!

그 남자애는 10시10분 눈썹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 일을 계기로 아이는 자신이 사귀고 싶은 이상형에 대하여 꽤나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다음은 그녀가 연애 상대로 제시한 남자의 조건입니다.


7.


남자여야함. 트렌스젠더 안됨. 장발 안되고, 단정한 머리여야함.

나이는 동갑이거나 한두살 많았으면 좋겠는데, 어린 애들은 생각의 깊이가 낮기때문임.

눈썹과 눈매가 10시10분, 두꺼운 마초형 얼굴이어야하고 약간 사각형의 각진 턱선이어야 함.​

근육질의 두꺼운 체형을 선호하고 날렵하거나 마른 멸치 같은 남자는 질색임.

키는175cm에서 190cm 사이어야 하고 191cm는 너무 커서 안됨.

외국에 사는 사람이어도 상관 없으나 일단 한국인이어야 하고, 혈액형은 A형이나 B형이었으면 좋겠음. AB형은 너무 제멋대로일 것 같아서 안됨.

성격은 바람기가 없는 진중한 사람이어야 하고,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MBTI가 어떻든 상관없지만 인스타그램을 안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음.

담배를 피지 말아야하며, 장인어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도덕경이나 누룽지조아님의 책을읽었으면 좋겠고, 지병이 없는 신체 건강한 사람으로 추후, 내가(큰딸이)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 때 도움이 되도록 물건들을 잘 고치고, 시골에 땅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음.​

친척이 너무 많으면 신경쓸일이 많아지니까 형제 자매는 1명이나 2명정도였으면 좋겠고, 머리는 매일 안감아도 좋으니 양치 잘하고 향수 안뿌리는 목소리 톤이 낮은 남자. (아주 낮은 필요는 없지만 황광희처럼 고음은 싫음.)

엄마처럼 실생활의 잡지식을 많이 알고 있고, 아빠처럼 식탁에 올라온 모든 음식을 남김 없이 싹싹 먹을 수 있으며, 독서와 글쓰기, 등산을 좋아하고, 어린시절의 사진이 많아서 추억할 거리가 많은 남자였으면 좋겠음.

중요한건데, 길에 다니다가 땅바닥에 갑자기 주저 앉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 왜나하면 데이트하다가 갑자기 중요한 것이 떠오르면 갑자기 주저 앉아서 이야기 해야하거든.

나(큰딸)처럼 신기하게 생긴 물건들을 모으는 걸 좋아했으면 좋겠고, 꼭 신기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가기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이었으면 함.

이건 굉장히 중요한데,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자신의 감정을 인식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함. 그런 사람이어야만 대화가 통하기 때문. 삶에 대하여 자신의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또 중요한 건데, 나(큰딸)을 덕질해줘야함. 왜냐하면 나(큰딸)는 그 사람을 덕질할 것이기 때문.

아! 하나 더!

최애 책 어린왕자를 읽으려는 의지가 있어야하고, 지금 읽고 있는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본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나 대신에 언제든지 이 물병을 따 주는 사람이어야함.​



8.


손 아귀 힘이 약한 큰딸은 탄산수 뚜껑을 혼자서 못땁니다. 항상 저나 동생의 도움을 받지요. 그 점까지 생각하다니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아마 저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도 압니다.



그저 저 수많은 조건들은 아빠의 현재 모습과 엄마의 모습, 그리고 자신이 되고 싶은 꿈이 섞인 말그대로 이상향, 유토피아인 것이지요.



그래도 그 속에는 그녀가 바라는 남성상이 들어있습니다.

삶에 대한 성찰이 깊어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나를 많이 좋아해주는 사람

그리고 10시10분 화난 눈썹의 근육질 마초상 외모으로 말이지요.



10시10분.​

이 시간은 제가 설거지를 마치고 한숨 쉬는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10시10분'은 장래 사윗감이며, 제 딸의 미래여서, 제 딸을 상징하는 단어이거든요.



고3에 올라가는 큰딸과 함께 노력하고 견디고 싶었습니다.

절실하고 성실한 마음을 모아.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1일1포스트를 결심했어요.

매일 10시 10분에 글을 올리는 것은, 제가 제 고3딸에게 보내는 응원입니다.

갑자기 55개의 제목을 쭉 올린 것도, 제 다짐에 쐐기를 박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이웃들에게 공표를 하고나면, 어쩔 수 없이 매일 글을 쓸테니까요.





글을 마치며, 둘째딸 예똥이가 그린 언니의 10시10분 이상형을 첨부합니다.

이상형과 꼭 닮진 않았다고 합니다. 그림보다 더 턱이 각져야하며, 목이 두꺼웠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아이돌중에 뷔가 가장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뷔는 10시10분은 아니지 않나?? 아래 그림으로는 뷔보다는 세븐틴의 호시가 떠오르네요.)

둘째딸이 그린 큰딸의 이상형


눈내리던 1월 5일 아침



어찌 저찌 작심3일을 지나, 4일차 글프를 마칩니다.

그저 하루를 사는 여자

가보리다의 남은 50여일을 응원해주셔요.

이번에는 기필코 55일을 채우고 싶습니다.

플리즈...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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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사위가살짝무서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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