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20대 때는 그게 어려운 건지 쉬운 건지 알 수 있는 데이터가 없었다. 그러니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다. 초중고 공부밖에 할 게 없었으니, 그땐 문제 푸는 게 인생 최대 고민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세상이 말했다. 알아서 길을 짜라고. 학비 대출, 대외활동, 팀플 과제, 수강신청까지— 시간을 설계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삶. 그런 세상이었다.
취업 시장에서 '팔릴 만한 나'를 만들기 위해 미친 듯이 점을 찍었다. 이력서가 내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졸업 후, 매운맛 사회를 맛보게 된다. ‘내가 원한 삶이 이런 거였나?’ 갑자기 인생을 되돌아본다. 심지어 ‘학교로 돌아가 팀플이라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해봤다.
인턴을 하며, 졸업 논문을 쓰며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확신했다. ‘내가 논문을 또 쓰면 성을 갈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힘든 것들의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였다.
다시 대학을 가야 할까 말까, 갈림길이 왔을 때 ‘또다시 그 짓을 해야 해? 돈은? 나이는?’ 망설임이 생겼다. 하지만 그때까진 젊었었나 보다. “까짓 거, 해보지 뭐.”
새로운 분야를 1학년부터, 나보다 여섯 살 어린 애들과 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미친 짓이었다. 나중에 깨달았다.
‘내가 미쳤지. 돈, 시간, 사람 다 잃으면서 이게 뭐냐.’ 그렇게 또 2년이 흘렀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제2의 수능 같은 국가고시만 바라보고 달렸다.
그리고 또 다른 분야의 사회를 맛보게 된다. ‘이 대우 받자고 내가 그 투자를 했나?’ 직업적 사명감이고 뭐고, 박살이 났다.
생각보다 더 어렵고, 더 서운하고, 더 고됐다. 현실의 바닥을 치고 있을 때,
농담처럼 던지는 청내공 3천 얘기와 웃어주는 동기들의 온기가 나를 붙잡아줬다.
3년을 익숙하게 버티던 걸 또다시 내려놓고 새로운 환경으로 이직을 준비했다.
그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처우는 엉망이었고, ‘이걸 왜 선택했을까?’라는 후회가 하루 걸러 찾아왔다.
집 가까운 병원, 인센 많은 병원— 편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나는 또다시, 경기도 끝 언어장벽 있는 병원을 택했다.
왜냐고?
솔직히,
갈증 때문이었다. 나를 믿었다기보단,
“이 길 끝엔 뭐가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궁금함.
“아, 이제 좀 인생 살 만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왜 또 만족을 못 하지?”
나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직면하고, 채워가는 과정은 괴롭고 지루했다.
그 이상이 너무 높아서 그 욕심이 저주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감사하며 살아간다.
나는 20대보다 조금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게 조금은 쉬워지고, 익숙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를 겪을수록 선택이 더 무겁고, 실수가 더 무서워졌다.
지금 문득 드는 생각은 이거다: 나는 애초에 손에 아무것도 쥐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갈 때도 그럴 것이다.
지금 내 삶이 주는 편안함도 사실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빌리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버리고 비워야만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걸 안다.
떠나보내야 다시 맞이할 수 있다는 것도.
쉬운 길 vs. 어려운 길보다는
가본 길 vs. 안 가본 길이
지금의 나에게 더 맞는 말 같다.
안 가본 길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시간,
그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오늘도 나는, 편한 길보다 궁금한 길을 향해 한 발 더 내딛는다. 그것이 후회든, 성장의 시작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