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아는 내 한계를 맞이하는 것
“요가나 필라테스로 근육을 늘리는 게 좋을까요?”
환자들이 자주 묻는다. 긴장된 근육을 릴리스하는 치료가 많기 때문에,
몸을 스트레칭하는 동작이 많은 운동을 권장하는 경우도 많다.
자연스레 요가나 필라테스가 관심을 받는다.
그런데 해본 사람은 안다. 요가는 헬스보다 더 어렵다.
헬스는 빠르고 강한 힘, 펌핑을 느끼게 해준다.
고립된 근육을 집중적으로 쓰기 때문에 내 몸이 변하는 게 빠르게 보인다.
반면 요가나 필라테스는 복합 관절이 움직이고,
느리고 작은 근육들이 작동한다. 자극이 미세하다.
바로 그게 어렵다.
요가는 종종 '운동'이 아닌 '수련'이라 불린다.
처음엔 그 말이 왜 그렇게까지 과장된 표현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수련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요가는 단순히 자세를 흉내 내는 게 아니다. 지금 어떤 관절을 어디까지 움직이고 있는지,
어디에 힘을 주고 있는지, 어떤 부위에서 통증이 올라오는지를 계속 관찰해야 한다.
내 몸과 대화를 멈추면, 자세는 무너지고 통증은 신호 없이 온다.
특히 요가에서는, 나의 가동범위 한계 끝에서 자세를 유지하고 버텨야 한다.
무게조차 없는 맨몸인데도, 자세 하나를 유지하는 동안 숨이 턱턱 막힌다.
그 몇 초가 영겁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 시간 동안 나의 한계를 매번 마주한다. 겁이 나서 멈추고 싶을 때, 그래도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을까?
망설임과 도전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60분이 지나간다.
그 안에서 아주 작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한다.
신기하게도, 그런 과정을 겪으며 스스로를 조금씩 믿게 된다. “할 수 있어. 해보자.”
그 한 마디가 내 몸을 조금 더 열고, 자세를 유지하게 해준다.
아주 미세한 체중 이동, 작은 중심 잡기의 용기.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한다.
그 1~2분을 버텨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단순한 신체 감각을 넘어선다.
그래서 요가는 근육의 유연함뿐 아니라, 인내의 유연함도 키운다.
나는 요가를 통해 집중력이 좋아졌고,
인내심이 늘었고, 감정 기복이 줄었으며, 내 자신을 조금 더 믿게 되었다.
무엇보다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 바뀌었다.
그렇게 요가를 하는 일주일의 두 번, 그 한 시간이 내 삶 전체의 리듬을 바꿔놓았다.
그 어떤 디지털 장치도 없이, 오직 나 자신과만 마주하는 시간. 그 안에서 내면은 단단해지고,
삶의 통증에 대한 반응도 달라졌다.
그래서 환자들이 “어떤 운동을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을 때,
나는 단순히 요가냐 필라테스냐를 따지기보단 이렇게 답한다.
“뭐든 도전해보세요. 어떤 운동이든 나쁜 운동은 없습니다.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운동 후에 통증이 있다면 제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운동은 근육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삶을 견디는 근력을 만들어주는 일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