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딱 고개' 뚜벅뚜벅 아래만 내려다보고 걸을 일이다.

누구에게나 오는 힘든 시기 묵묵히 그저 견뎌내어야

by 로라

오늘 초록 참 예쁘다.

단순히 예쁘다기보다는 그 무지막지한 여름의 폭염을 맨 몸으로 맞으며

견뎌낸 그런 성숙한 초록의 기운

온 사방이 물들어 올라오는 연둣빛의 푸릇한 느낌과는 다른

열매를 맺기 위한 가을을 받아들이기 위한 그런 묵직한 초록 말이다.

바람 끝이 향긋한 것이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바람이 전해주는 향기.

샤넬 No 5와 비교할 수도 없는 자연이 주는 전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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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일들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이곳저곳이 꽉 막혀서 갑갑증이 생길 때 있지 않았던가.

마음이 왠지 편하지 않을 때는 그저 산을 오를 일이다. 이제는 그저 내 한 몸 건사하고 살기만 해도 되는데 그래도 걱정은 끊임이 없으니 이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원죄의 무게일지도 모른다.

이제 한참 입시로 인한 치열한 시기를 겪고 있는 동생과 통화를 하고 나면 한참 옛날 나의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그 시기를 겪고 지나 온 사람으로 항상 동생의 편에서 이해하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이 자랄 때 가장 힘들었던 시기들은 누가 뭐래도 "입시의 기간"들인 것 같다.

입시를 고민하는 것도 사치일 정도로 힘든 이들도 있겠지만

보통 그냥저냥 가정들은 아이들이 한 번의 시험이라도 잘 치기를

그래서 내신등급을 잘 받아서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 사이에 겪는 마음고통은 당연 필수 옵션이니까.

그리고 대학을 가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사기성(?) 발언을 마구마구 뱉어낸다.

대학만 잘 가봐라. 예쁜 여자, 멋진 남자가 눈앞에 꾸러미로 펼쳐질 것이라던지

그냥 대기업 같은 곳은 저절로 들어가진다 라는 그런 새빨간 거짓말 말이다.

막상 대학을 들어가면 그 기쁨은 잠시이고 다시 취업걱정에 시달린다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다 알게 된 사실이다.


한참 나이차이가 나는 막내 동생은 이제야 입시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라서

카톡 프사 등에 아이에 대한 응원문구 등도 적어놓고

온갖 비위를 맞추고, 아침저녁 라이딩을 최우선, 시험기간 비위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고 그런 노력들로 이 시기를 조심조심 두드리면서 넘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시절 나는 어떻게 했지?

벌써 다 까먹어 버리고는 '인생 별 것 있어? 다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이런 쪼의 생각을 하고 산다.

그런데도 분명한 기억은 '마음이 힘들었을 때의 나의 해소 방법'은 있었다.

그저 걷고 오르고 하는 것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기도이고 불공이며, 운동인 것처럼 나는 그냥 수도승처럼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올랐다.

동네 평탄한 뒷길부터

돌부리가 차이는 제법 높은 산까지

경사가 오르내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산에서 한없이 걸어도 평지인 길까지

초록이 우거진 길부터 공동묘지가 줄지어 있는 그런 공간들까지

그냥 모든 길만 보이면 걸었다고 봐야겠다.

왜 그랬을까?

쉽게 이야기해 보면 몸이 힘들면 그 순간 잡념은 없어지고

공동묘지를 지나면 으스스하나 그 순간은 인생 무념 무상해지기 때문 아닐까?

산속을 걸을 때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그 느낌 때문에 자꾸 가게 되는 중독성말이다.


어느 날 북한산 코스를 조금 난이도를 올려서 족두리봉에서 향로봉, 비봉을 거쳐 제법 나의 수준으로는 압박산행을 하게 되었다.

모르긴 해도 아마 아이의 기말고사 같은 시기로써 내 마음도 힘들었던 시기 아니었을까 싶다.

숨이 코 끝, 턱 끝까지 치받고 올라올 즘 사람들은 그곳을 "깔딱 고개"라고 보통 칭하는데 참 맞는 말이다 싶은 것이 정말 숨이 깔딱 넘어가는 느낌으로 저절로 '미쳤지, 내가 오늘이 마지막이다. 다음에는 절대 등산 안 한다' 각오를 다지는 그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 혼자만의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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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를 때 특히 경사가 높은 곳을 오를 때는 그저 뚜벅뚜벅 아래만 내려다보고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산봉우리가 바로 저기인데

정상에 인접할수록 그곳은 가파르고 길이 험하게 되어있다. 그때 고개를 들어서 정상 쪽이나 깔딱 고개의 끝을 바라보면 그냥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빠지고 엄두가 나지 않으며 걷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그런 느낌.


그런데 고개를 푹 숙이고 그저 묵묵히 발아래 길만 한 발 한 발 내디디다 보면

어느새 그 길은 나에게 끝을 내어준다.

올라갈 마지막 깔딱 고개가 7~80도의 경사진 길일 때 위를 바라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서버리게 되는 느낌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그 말처럼

그냥 이겨내고 그냥 견뎌내어야 한다.


요즘은 걷기 좋은 평지가 나오면 기쁘기보다는 이다음 맞이할 길이 얼마나 사람을 잡으려고 이런 평탄길을 제시하지?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면서 다음 맞이 갈 길을 위한 마음의 준비와 함께 깊은 심호흡을 하며 저절로 자세를 낮게 된다.

다리 보폭이 작고 산을 잘 못 오르며, 특히 오름길에서 굉장히 힘들어하는 관계로 나는 늘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걸었다.

어느 날 저렇게 낯설 수가......

구부정해진 허리에 말없이 입을 꽉 다물고 배낭은 혼자 다지고(저는 빈 몸으로 따라만 다녀도 힘들어서) 감정표현을 잘하고 끊임없이 떠드는 나에 비해 조용히 묵묵히 걷기만 하는 그 뒷모습에 한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가장의 무게와 삶의 모든 편린들을 배낭에 눌러 넣고 앞장서서 험한 깔딱 고개를 말없이 걸어 올라간다.

아마 그 길에서 힘들지 않은 사람 없으니 돌아보지 않고 그저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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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 가면 김밥 두 줄과 컵라면 한 개를 만들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내려오는 것뿐인데도 일주일 동안 스트레스와 막막함이 많이 해소되는 효과가 있었다.

대화의 많은 부분이 아이들에 관한 문제인데 우리는 다들 전생에 어떤 연들을 가졌길래 이리들 만나 결혼을 하고 겁도 없이 자식을 두 명씩이나 낳고.... 온갖 바람을 다 온몸으로 막아내는가?


나와 남편으로 인해 생긴 자식이란 인연이 너무도 소중하다 못해

한여름 폭염을 이겨내고 견디어낸 초록의 무성함처럼 이제 빨갛게 물들 단풍을 맞이할 건강한 초록으로 느껴진다. 나도 우리 부모에게 이처럼 중한 인연일 텐데 한낱 제 자식일에만 마음을 쏟아붓고 나를 있게 해 주신 분에게는 그냥 스치는 듯 지나는 마음이니 아마도 부모 자식이 된다는 것은 내가 부모에게 지은 죗값을 또 내 자식에게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자식에서 부모로 가는 길이고

그것이 한평생 살아가는 인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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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냥 묵묵히 지금 자리에서 뚜벅뚜벅 걷자.

평평한 오솔길이 펼쳐져있다고 자만하고 까불락거릴 일도 아니고

오름길이 거칠고 어렵다고 한탄할 일만도 아니고

바로 저 깔딱 고개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뚜벅뚜벅 발아래만 바라보고 묵묵히 걸어보자.


그 긴 시간을 우리에게 내어주고 이리저리 밟히어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서 있는 북한산 바위들처럼

자식문제이던, 경제적 문제이던, 직장이던, 건강이던 그저 묵묵히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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