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이 아니라 스토리다.

가난한 엄마의 자기 변명

by 로라


토요일 저녁 해 질 무렵 운동도 할 겸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걸으러 나갔다.

어스름저녁인데 여러 무리가 운무처럼

바닷물속의 수초 떼처럼 여기저기서 막 움직이고 있었다.

좀비들도 아닐 테고 가까이 가 본 나는 정말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고 해야겠지.


구석구석에서 약 10명 정도의 아이들이 그룹을 지어 여기저기서 열심히 농구공으로 드리블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녹조류의 떼지음처럼 흐리멍덩하게

그러나 또렷하게 뭉쳐진 덩어리가 파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마음을 진정하고 가까이 산책하는 것처럼 다가가 보았다.

아뿔싸~

거기에는 우리 딸과 친한 친구들도 몇 명이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집은 멀리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갑자기 중학교, 초등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중1이 된 큰 딸은 사투리를 쓰면서 그 교실에 앉아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모르겠다. 우리 딸은 집에서 지필 시험공부정도하고 있는데 운동장에서는 체육 첫 수행평가를 위해서 저리 그룹 과외를 하고 있다니 이거는 문화충격 같은 쇼크였었다.

'아니, 체육 수행평가를 위해 저리 과외를 한다고?

미친것 아닌가?'

그러나 미친것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미친 장면은 이미 너무도 당연한 과정이었고 더욱이 친한 친구도 말해주지 않는 그들의 비밀이었다. 이미 그룹단체는 초등부터 끈끈히 연결되어 있고 내가 원한다고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우리 아이는 어떤 수행을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은데)

나도 운동하는 척하면서 발걸음으로 세워진 꼬깔콘의 위치를 거리를 외우고 색마분지로 고깔을 대강 만들어서 아이와 함께 다른 운동장으로 가서 10개 정도 세워놓고 농구공을 들고 드리블 연습을 시켰다.

그런데 한 바퀴 제대로 돌지도 못하고 큰 아이를 발을 삐끗해서 치료받는 신세가 되었다.

참 웃지 못할 첫 에피소드라고 해야 하나?


처음 전학 온 일 년 내내 놀라움과 믿지 못함으로 보낸 것 같다.

그 문화적 격차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친한 친구가 살던 아파트로 이사 온 나는 흔히 뉴스에서 보던 자기 아이가 다니던 과외선생님 소개 안 해준다던 그런 충격적인 실화를 직접 겪고 나서야 정신이 반짝 들었다.

그 친한 친구는 물론 나에게서 손절(?)당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흥분했는데 오래 살았더니 내가 그들의 문화를 몰랐던 것이지 이미 만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엄마나 아이나 "촌 년"인 셈이었다.

시골상경 우리 가족은 그 후 오래도록 스펙을 위한 활동 등에 힘들어하면서 수행, 내신, 창체 쓰리콤보의 중압감으로 힘들어했다.




우리나라의 사교육비는 과히 세계 탑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의 학원비 만은 끊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닌 것 같다.

통계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백화점 매출이 줄었다던지 그런 기사 속에 살짝 서글픈 것은

가정경제가 어려워지면 백화점에 남성복매출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하고

아동용품이 가장 마지막까지 버텨준다는 이야기는 이런 가정경제의 특이점을 반영한 것일 것이다.


그동안 살면서 몇 번의 큰 경제 위기들을 겪으면서 살았지만 그때마다 신문기사는 어찌 그리 똑같은지

복붙 한 느낌이라고 할까?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나라를 위해 기꺼이 금목걸이, 금반지를 갖다 바치기 위해 줄을 섰던 그 시절의 공동체적인 애국심 같은 것들이변했을 뿐.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 같은 것도 한 줄 세우기가 아닌 좀 더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보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이고 나라나 세계의 위기도 이제는 개인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어떤 모멘텀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생긴 것 정도의 변화말이다.

그러나 영원불멸의 끝판왕은 '사교육비'이다. 오죽하면 망국의 사교육비라는 오명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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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부모만큼 아이들 교육에 진심인 나라가 있을까?

교육에 진심이 아닌 부모가 있을까만은 어떤 형태의 교육을 지향하는가 하는 질적 차이는 너무도 크기에 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기본 사교육은 시켰지만 큰돈을 들일 수 없던 나는 그 시절 참 고민이 많았다.

사교육은 해도 괴롭고 안 해도 괴로운 계륵과 같은 존재일 것 같다. 대학입시 방법이 변하면서 단지 '수능점수'보다 거기에 보태서 '스펙 쌓기 경쟁'이 점입가경이었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매스컴 등에서는 젊은이들의 "스펙 쌓기" 경쟁이 과열화되어서

스펙을 쌓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 등이 강조가 되고 처음 시작 시절은 "헤비스타트" 같은 집짓기 해외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무수히 많은 랩실 참여 경험 등등 스펙을 위한 활동까지 첨부되니 언제 공부하고 언제 독서기록 적고 언제 그 많은 봉사활동을 다 했다는 것인지 정말 헷갈린다.

우리나라 입시는 제갈공명이 아니라 그 누가 와도 해결될 수 없는 난마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중에 머릿속으로 무수한 아이들을 봐왔지만 단지 스펙을 보고 뽑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혼자 생각을 했었다. 스펙이 아니라 '스토리"라는 생각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날 아침 기사에 이 제목이랑 똑같은 제목이 뜨길래 깜짝 놀랐다.

아니 누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게야?

구체적인 내용은 많이 달랐지만 이제 그 스토리 입히는 일조차 사교육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입시에 있어서 특히 수시라는 입시에서 무수히 많은 칸을 채우는 노력 즉 "스펙 쌓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또 정량화가 되어서 도대체 어찌해 볼 재량이 없다.

취업조차도 신입보다는 경력위주의 채용이 늘고 동시 대규모 공개채용보다는 수시 소인수 채용으로 바뀌니 한 가지가 좋아지면 또 한 가지는 문제가 생기는 것.

'스펙'이라는 말을 빼면, 대학생활과 취업이 이야기가 안 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스펙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 같다. 아이가 취직이 안되어도 어느새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족해서 아이를 어학연수를 못 보내서....' 이런 이상한 회피 문화와 부모의 자책이 이어지니 어찌 이를 개탄하지 않을 수 있나?

식스팩이라면 보기나 좋지만 그냥 막연한 스펙은 상당히 객관적으로 비교되어야 하므로 그에 따른 경제적 출혈은 물론이며 비교해 가면서 자꾸자꾸 쌓아 올려야 하는 바벨탑처럼...

끝이 없다는 것....

거기다 솔직히 까발려놓고 보면 내용이 전부 청량리에서 왕십리라는 것


cf하나에도 스토리를 입히는 것이 먹히고,

기업경영도 휴머니즘을 까는 스토리로 장식하는 지금

아이들이 스펙에 쏟는 시간과 노력, 금전을 조금의 노력으로 스토리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자랑과 활동의 나열에 불과한 자기소개서는 말 그대로 스펙의 나열이지만 첫 줄에 확 잡을 수 있는 스토리는 생각의 발상과 전환을 통해서 나온다.

삼 년 동안의 스토리를 기억에 의존할 수만 없어서

기록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래서 기록을 열심히 했다. 마치 브런치작가님들이 매일 쓰는 것이 최고의 글쓰기라고 말한 것처럼 그때의 생생한 감정이나 느낌은 펄떡펄떡 살아 뛰는 갓 건져 올린 고기 같은 느낌이어야 했기 때문에 사교육을 많이 시키지 못해도 아이가 입시할 동안 다양한 일들과 그때의 감정 등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신이 우리에게 망각이란 최면제를 줌으로써 영원히 잊지 않을 것 같았던 사건과 그날의 감동들도

어느 순간엔가 잊히고 가물가물하게 만드는 선물을 주셨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에세이 주제를 찾을 때 머리를 쥐어짜지 않고 수없이 많은 마인드 맵을 하지 않도록 하려면


'천재의 기억보다 바보의 기록이 더 중요하다'는 말 만고의 진리이다.

어떤 입시와 어떤 시대라더라도......




이미지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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