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 짓

by 로라

힘들게 힘들게 겨우 한라산 등반을 하였는데 지쳐서 풀어진 행주 같은 나와 달리

한라산 정상에서 등산객들의 음식물을 노리면서 살아온 저 까마귀들을 맞이하면서 놀라버렸네요.

잘 학습화되었는지

이쪽 등산객이 짐을 싸면 스스로 음식을 꺼내는 다른 팀으로 옮기고

식사를 하기 위해 도시락을 꺼내면 저 바위에 앉아서 유유히 자리를 옮겨서 대기하기도 하며 간혹

늦게 음식물을 열면 낚아채어가기도 합니다.

검은색 바위에 엉겨 붙어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기어코 한울음 분홍빛을 토해내는 철쭉은 어떻고요.

그러네요.

살아가는데 기본 생존 스킬은 다 살면서 적응이 되는데

저런 자생력을 아이들에게 키워주기 위해 무엇을 했나 생각해 보면 글. 쎄. 요입니다.




지나온 세월들을 꼼꼼히 반추해 보면 '헛 짓'한 것이 한두 바가지가 아니라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지 싶습니다.

가벼운 음식의 낭비는 기본이고

어울리지도 않은 옷을 충동구매하고 후회한 적은 얼마나 많았으며

사람들과 만나서 영양가 없는 험담이나

연예인 걱정은 또 웬 오지랖이냐고요.

그런 것 다 용서돼요. 이해되고요.

투자대비 효율적인 면에서 너무 부족한 것도 많았고

인생사 헛짓이 한두 개가 아닌 듯합니다만......





헛 짓 중 가장 큰 헛 짓은 어떤 결과가 올지도 예측할 수 없으면서 한 투자들이 한 몫하는 것 같습니다.

간혹 흔히 지나가다 대화 중 또는 상담을 하다 보면


"우리 ** 가 몇 살에 한글을 뗏어요"

"글쎄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애플 하면서 영어로 말하더라고요"

하는 말들을 종종 듣게 될 때가 있지요?

들으면서 그 말의 행간에는

"우리 **는 천재인 것 같아요"를 깔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흔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 우리 **가 얼마나 활동적인지 몰라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 행간에

" 활동적인 것과 과잉행동을 구별하지 못함"에 서글픔이 좀 들기도 하지요.


우리는 왜 어린아이들한테 글을 배우게 하나요?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어린 자녀에게 글을 가르치는 목적이 일찍 책을 읽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을 하게 돼요.

엄마들의 시야는 딱 그 시기에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뛰어나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머무를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요.

남편이나 시댁을 흉보는 것이 끝에는 자랑하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




책을 읽다가 가슴에 심하게 자국이 남는 말이라서 한 번씩 인용하는 말입니다.

"그보다는 아이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성숙하고 조화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려는데 근본목적이 있습니다"라고요.




<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면서 살걸>



살면서 헛 짓 한 것마다 구형을 한다면 아마 저는 사형감일 것 같아요.

결코 무기징역이나 감형으로 특사로 파견될 수 없는 사형감이요.

의도가 나쁘지 않았기에 용서와 이해는 되지만


제가 한 헛 짓 중 가장 큰 헛 짓은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키운 것"같습니다.


세상에 큰 변화와 혁명을 가지고 온 많은 위인들의 이야기를 읽어도 그 들 중 누구도 우리나라 같이 공부하는 형태로 키워진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차고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자

핸드폰이 아니라 생각의 회로를 돌려본 자

무수히 실수하고 부서뜨리고 다시 만들어 본 자

그들이 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니까요.


많은 학원비와 문제풀이 투자 시간들을

좀 더 잘난 척하고 비교하는 사람들 소리에 귀를 막고 "생각할 여유와 행복함을 느낄 생활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시간을 주지 못한 것이

자신이 스스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태도에

좀 더 투자하지 못한 것이

그동안 제가 한 것 중 가장 큰 "헛 짓"아닌가 싶어요.

간혹 확~ 지른 비싼 옷이나, 안 사도 될 것 구입 후 후회 등은 헛 짓 수준에도 못 든다는 것을

요즘 새삼스레 느껴보네요.

당신의 헛 짓에 대한 구형은 몇 년인가요?


이미지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