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나름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학습지를 하고, 중고등학교 내내 학원을 다니며 영어를 배웠다. 호주에 와서는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했고,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대략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어를 배우고 익혀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호주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바로 ‘언어’였다.
한국에서 배운 영어는 주로 듣기와 쓰기에 집중된, 전형적인 교과서 영어였고, 어학연수 프로그램에서 배운 영어는 확실한 문법의 예의 바른 표준어 영어였다. 하지만 호주 회사에서 실제로 쓰는 영어는 내가 지금껏 공부한 어떤 교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찐 영어’였다.
호주 직장 동료들은 내가 배워온 영어와는 전혀 다른, 가벼운 농담과 비속어, 그리고 은근한 반어법이 섞인 표현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들과 대화할 땐, 마치 내가 알고 있던 ‘영어’를 다 지우고 새롭게 언어를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나는 호주에서 처음으로 다녔던 직장을 그만둘 때, 호주 동료들에게 이렇게 농담 섞인 작별 인사를 했다. “영어 학원에서는 절대 못 배우는 진짜 영어를 알려줘서 고마웠어요.”
예를 들면, 이런 대화가 있었다:
대화 내용
동료 A: Can I pick your brain?
동료 B: Yeah, hardly left. But yes, you can.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동료 A: 너의 뇌 좀 뜯어도 될까?
동료 B: 남은 건 별로 없지만, 그래해봐.
실제 의미
동료 A: 네 의견 좀 물어봐도 될까?
동료 B: 별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 물어봐.
처음 이 표현을 들었을 땐, 내가 뭔가 끔찍한 얘기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교과서식 영어만 알고 있던 나는 회사에서 무시무시한 대화가 오가는 줄 알고 순간 움찔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건 일상적인 호주식 표현이자 가벼운 유머였다.
비슷한 예로는 이런 것도 있다.
"Can you give me a hand?" / "I'll give you a hand."
직역: 손 좀 줄래? / 내가 손을 줄게.
해석: 도와줄 수 있어? / 내가 도와줄게.
회사에서 또 하나 적응이 어려웠던 건 바로 반어법 대화였다. 호주 사람들은 생각보다 위트가 넘치고, 상황에 따라 농담과 반어법을 자주 쓴다. 이게 익숙하지 않던 나로서는,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이 잘 안 돼서, 다들 웃을 때 나만 어색하게 웃지 못했던 적도 많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대화 내용
동료 A: How are you?
동료 B: Oh yeah, I’m living the dream. Can’t complain.
해석
동료 A: 요즘 어때?
동료 B: 아~ 정말 완벽한 삶을 살고 있지 뭐. (사실은 힘들어 죽겠다는 뜻의 반어법)
또 이런 대화도 있었다
대화내용
동료 A: We have a meeting on Monday morning.
동료 B: Excellent! Couldn't think of a better way to start the week!
해석
동료 A: 월요일 아침에 회의가 있어요.
동료 B: 와~ 한 주를 이렇게 멋지게 시작할 수 있다니, 완벽해요!
(사실은 “왜 하필 월요일부터 회의냐…”는 반어적 한숨이 담겨 있는 말)
이처럼 마음과는 정반대의 말을 위트 있게 던지며, 회사원의 삶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통하는 공통 언어인 것 같다.
20년이 넘도록 영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며 호주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표현들을 마주친다. 언어를 배우는 길은 참 끝이 없구나 싶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언어뿐아니라 세상을 늘 배우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