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외로움 끝에 만난 따뜻한 브런치

by 로린

9살 때부터 맞벌이로 늘 바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나는 여섯 살 어린 동생과 하루 종일 둘이서 시간을 보냈다. 소시지를 구워 먹으려다 손을 덴 자국을 볼 때면, 그 시절이 생생히 떠오른다. 아이스크림을 빨리 녹여 먹고 싶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가 불이 붙어버려, 까맣게 타오르는 아이스크림을 부엌 싱크대에 던져놓고 엉엉 울던 날. 밤 9시면 돌아오신다던 부모님이 시간이 훌쩍 지나도 오시지 않으시면, 나는 내복 차림으로 어린 동생을 업고 아파트 입구에서 떨며 기다리던 날. 그 시절의 나는 늘 이롭웠고, 그 외로움은 너무 깊고 길어서, 마치 끝없이 이어진 겨울밤 같았다.


열 살이 되던 해, 나는 힘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겨우 10년 살았네.”


어린 나이에도 인생이 버겁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끝없는 추위 속에서 내가 붙잡은 건 글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글 속에서 여섯 명의 형제자매가 함께 사는 시끌벅적한 대가족을 만들어냈다. 내가 만든 이야기 속 가족들의 웃음과 소동으로 가득 채워진 에피소드들은 내 외로움을 조금씩 녹아내렸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나는 정성껏 쓴 글을 담임 선생님께 내밀었다. “오, 그랬구나. 선생님이 읽어보고 돌려줄게.” 선생님의 한마디에 나는 금세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지만 내 글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내 첫 소설을 잃었고, 함께 잃어버린 건 ‘나는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후 나는 스스로를 체념하며 글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바다 건너 호주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바쁘고 분주했지만, 행복했다. 혼자가 아닌 가족이 생겼다는 기쁜 도 잠시,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남편과 아이들 속에서 나는 다시금 외로움 속에 서 있었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라고 했던가. 나 역시 맞벌이를 하며 친구를 사귈 시간도,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여유도 없이 살았다. 그렇게 외로움이 점점 짙어가던 어느 날, 나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보석처럼 빛나는 브런치를 만났다.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두려움이 여전했지만, 결국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이 두려움을 밀어내버렸다. 열한 살 소녀가 선생님께 글을 내밀던 마음으로, 나는 떨리는 손으로 브런치 작가 지원서를 보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 한 줄의 이메일을 받은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치 어린 내가 뒤늦게나마 인정받은 듯했다.


11살 외로웠던 아이는 27년이 지나 브런치를 만났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전히 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손이 떨리고, 누군가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부끄럽지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인생은 훨씬 더 따뜻해졌다. 실제로 만난 적도 없지만, 그 어디선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주는 구독자님들은, 어린 시절 혼잣말로 글을 쓰던 11살 아이에게 다가와준 친구 같다.


브런치를 만나고, 이제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춥고 외로웠던 나를 글쓰기로 따뜻하게 채워준 브런치는,

오늘도 외롭지 않은 삶의 꿈을 계속 이루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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