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경기에서 이어진 이야기

by 로린

호주의 학교에서는 해마다 한 번, Cross Country라는 달리기 대회를 연다. 이 대회는 원래 영국에서 학생들의 인내심과 체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된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 호주까지 전해졌다. 학교 주변의 들판과 작은 언덕, 산책로가 달리기 코스로 활용된다. 만약 그런 자연환경이 충분치 않다면, 학교는 버스를 대절해 가까운 공원에서 달리기 경기를 진행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모든 학생이 참여한다. 학년별로 달리는 거리는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초등학생은 2-3km, 중. 고등학생은 3-6km를 달린다. 남녀가 나뉘어 경기가 진행되며, 학년에서 가장 빠른 학생들은 학교 대표로 선발되어 인근 학교, 더 나아가 빅토리아 주 대회까지 출전한다. 이 달리기 대회의 목표는 ‘우승’보다는 ‘완주’에 있다. 그래서 실제로 경기라기보다는 모두가 즐기는 학교 행사로 여기며, 학부모와 교사들이 함께 응원하거나 학생들과 같이 달리기도 한다.


얼마 전, Cross Country 달리 경기를 마친 첫째가 식사 중 문득 물었다.


“엄마, 남자인데 여자부 달리기에서 우승하는 건 공평한 거예요?”


아이가 하는 말에 놀라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린 나는 아이가 설명하는 말을 잠자코 들었다. 이야기에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첫째가 다니는 학교에 한 고3 남학생은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트랜스젠더인데, 아직 의학적 전환 과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학교는 학생의 성 정체성을 존중하여 여자부 달리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결국 트랜스젠더 학생은 교내 여자부 경기에서 1등을 차지했고, 다른 학교들과 겨룬 대회에서도 우승을 해서 빅토리아 주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우리 딸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젠더 문화를 접해서 그런지, 트랜스젠더 학생이 자신을 여성으로 여기는 점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트랜스젠더 학생이 여자부 경기에서 우승을 한 것에 대해 '형평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이 하나의 의문을 시작으로 우리의 대화는 “형평성과 포용성”을 둘러싼 토론으로 이어졌다. 우리 첫째는 체격차이가 큰 트랜스젠더 학생과 함께 경기를 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했고, 나는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체성을 존중해야 하고 사회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이야기했다. 어느 한쪽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호주는 포용적인 문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참가하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그 트랜스젠더 학생의 여자부 대회 출전과 그의 우승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계 프로 스포츠계는 트랜스젠더 선수들에 대한 많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여러 나라의 스포츠 연맹들은 공정성을 위해 트랜스젠더에 대한 호르몬 수치, 성전환 기간, 나이 등을 고려한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뜨거운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공정함이란 무엇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그날 저녁, 우리는 단순한 학교 행사 이야기를 시작으로 성별 정체성과 스포츠의 형평성까지 폭넓은 주제로, 오랜만에 진지하면서도 재밌는 토론을 나눌 수 있었다. 아이와 저녁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족이 나누는 소소한 저녁식사가 세상을 담는 큰 그릇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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