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후추 없이도 후룩 넘어간다
움직임이 더뎌지고 멍하게 대충 아무 곳에나 시선을 고정한 채 있으면서 그게 크게 나쁘지가 않다.
게을러졌나, 겨울이라 그런거 아닌가?
애석하게도 활기라곤 없지만 그냥 그런 아침을 보낸다.
해가 쨍하니 드는데 아, 아까운 날씨! 속으로 탄식해보지만 굳이 나갈 마음까지 이어지지가 않는 걸 보면 참 신기해 예전의 나라면
좀 달랐던 것 같아서.
그래도
이젠 찰랑찰랑 넘쳐 흐르지 않을 정도로만 차는 것 같은 그 무엇. 나는 분명 아직 환자이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이 나쁘지가 않다면.
비통하고 답답하고 속이 꺼끌꺼끌해 참을 수가 없던 병증 초기에 비하면 참 ‘무미’에 가까운 것 같다.
이 맛의 우울은 당분간은,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겠지?
찝찔하게 톡 쏘는 신경들이 한 촉 한 촉 남김없이 나서 대들며 내 몸 여기저기 찔러대던 때를 생각한다.
입안이 죽도록 쓴, 그런 절망스러운 맛은 세상 가장 기분 나쁜 처음이었다.
어느날 아침은 말 그대로 반갑지가 못해서 또 참을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시간은 바쁜 행인처럼 한 번 돌아보는 일 없이 잘도 어딘가로 턱턱 흘러갔다.
그럼 중간인 낮과 오후, 오전들은 어딘가로 풀풀 날린 채 밤이 내려앉아 그나마 나를 가라앉혔다.
그러면 또 침대에서 꼼짝않고 웅크리고서 ‘잠이여 오라 너라도 와 주거라’ 주문을 외곤 했다. 한 생애 내내 잔 듯 어찌저찌 찾아온 긴 잠에 빠졌다가 눈뜨면 아
이 긴 시간을 잠만 자고도 잔 것 같지 않은 또 세상 가장 기분 나쁜 처음이었고.
의사 선생님께
입을 쥐어막고 눈물이 멈추질 않는 눈두덩을 그러 모아가며 토하듯 지난 밤 내 속에서 끓던 말들을 꺼내던 날을, 오랜만에 들여다본다.
급기야 조울증세가 시작되면서 약 처방이 조금 달라졌고 이전엔 없던 약효와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이 새로 시작됐었다. 약을 집는 손이 약간씩 떨렸었다…
병원에선 선생님과 상의한 예약 날짜가 문자로 안내되지만(늘) 한 번을 제때 가질 못한다.(지금도)
내가 병원에 가는 일은 아, 선생님 만나 얘기해야한다. 미쳐버리겠다, 싶을 때만 일어났다.(여전히)
진짜 제가 왜 이럴까요? 이렇게 병원 제때 안 오고, 약 제때 챙기지 못하는 병이 …혹시 따로 있는 거는 아니에요? 쏟아냈고 선생님은 웃으시고.
그럼에도 내가 나아지고 있는지 자문하는 건 이젠 다시 약의 종류가 이전으로 바뀌었으며 예약일은 한참 지나쳤지만 어제도 약을 먹었기 때문.
이렇게 슴슴하고 멀멀한 때가 있었나, 꼼꼼히 게워보는 중.
없었던 것 같다. 분명
이렇게 슴슴하고 별 맛 없이 식도 타고 내려가는 날은. 그래서 요 몇 주가 속편하고 걸리는 데 없었나봐, 싶다.
우울도 뭉근히 눌러 달래며 천천히 저어주면 약한 불에나마 잠시나마 잦아드는 것이었나.
무용하다, 그러나 반복하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싶다. 나는 어쩜 그런 마음으로 잦아드는 불씨 앞에서 내 우울의 솟아난 뿔들을 갈아보고 녹이고 싶었나
합격 드리겠어요. 나 자신.
다시 앓고 주저앉을지, 언제일지 모르지만 오늘의 맛은 자주 기억하고 싶은 감각이 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을 생산적으로 다루고 있었다는 깨침이 내심 기특하다.
우울하다. 그런데 간을 적게 해 한 그릇 천천히 넘기기 어렵지 않아서, 곤란한 정도는 아니다. 웬걸!
조금 보이는 세모진 하늘, 멋스럽게 드리운 나무 그림자, 근사한 캔버스같던 재색 외벽을 보았다.
나는 앞으로도 보는 만큼, 드는 만큼 생각하고 쓰리라 다짐한다.
꽤 괜찮은 일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다. 많은 약속보다 나를 더 쉬게 해준 스치듯 오던 생각들, 고마워. 부탁해 앞으로도.
아프게 망쳐져 왔지만 이제는 그렇게 아프게 까지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소이거나 해방인 것은 아니나 다시 이어 쓸 연료를 얻었다, 는 어떨까.
쓰면서 걷고 통증은 지나며 남는 것들을 관조하고 싶다. 보일듯 말듯한 끝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