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출해진 SNS와 한가롭다 못해 남아도는 시간들은 나를 어떻게 바꿀까?
서른 후반 쯤이었던 것 같다.
복닥거리던 내 인간관계들에 예상 못한 변수들이 침투해 모든 걸 바꿔버린 시기가.
영원할 줄 알았다.
1 새벽 3시 언저리에
‘ㅋㅋㅋ갑자기 우리 강남에서 같이 머리자른 날 생각남 미친…‘
같은 뜬금포를 쏘아올려도 1분도 안돼
‘ㅋㅋㅋㅋㅋ완전 언젯적이야 그때 진심 터짐‘ 하고 받아치던 M과의 새벽우정.
2 한달에 한 번은 만나면서도
부지기수로 통화하며 ㅠㅠㅠ만나야돼ㅜ만나야되는데 가까이 살면 내가 지금 가서 비빔면 해줄텐뎅
같은 달콤한 말로 울고 웃던 H와의 일상들.
3 넌 진짜 괜찮은거야. 뭘! 이쁘기만 하구만 VS 야…이쁜건너야 나한테 대충 말하지마 위로하지망(호호하하)
누가보면 환장할 노릇, 여자들끼리의 ‘예뻐 칭찬’부터 진지하게 ‘너는 진짜 다 할 수 있어 지금도 충분히 좋아‘
효과의 척도는 불분명할지언정 서로의 자존감에 분명 그득한 자양분을 퍼부었던 사랑의 단짝 N과의 애착
4 설명할 것도 없는 오랜 친구
K와의 … 더 오래, 영원할 것 같았던 부질없던 믿음
일일이 더 줄줄이 이어봐야 뭐하겠는가.
어쩌다 나는 모든 줄들을 끊고서, 지내고 있을까?
굳이 네 명을 짚고 읊어 보니 참 분주하고 생기있던 지난날들이었던 것 같다. 더불어 이런저런 (주제는 없고 보고 싶어 만나던)두 세 명 모임부터,
유독 합이 좋았던 회사 (퇴사자)팀 모임, 이래저래 또 달리 일로 알게 돼 친구가 됐던 친구들 모임 등등을 따지면…
뭉게뭉게 그리움만 커진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따금 연락하고 만나는 한 두 명을 제외하곤,
정말 여러 친구들과 단절됐다. 분명히 그렇게 느낀다.
이건 잠정적일 수 있겠으나(생일이 다가오면 축하 문자가 오기도 하며, 괜한 내 기분이 지어낸 단절 관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쨌든 1, 2, 3, 4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다. 최근 쭉.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알 수 없는 일들을 겪고 그 일들에 대해서 서로 알 수가 없으며 달라진 견해들과 상황들, 불가피한 다양한 이유들로
얽히고 묶여있던 것들은 풀리고 새로 다른 것과 엮였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새롭게 생긴 인연들과 손 꼭 잡으며 새 시간들을 지나왔다.
첫 연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애틋한 연말 인사를 나누고, 많이 고마운 마음을 아끼지 않으며 새해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오래돼 푸슬거리던 이전의 매듭을 홀로 그리워 하는 이 마음이란…
애달팠던 풋내나던 첫사랑만큼 가슴 한켠이 찌릿거린다.
키작았던 시절과 모든 시작에 어설퍼 친구인 너부터 찾으며 허둥대던 날들, 내 뒷모습과 눈물을 기억하고 있는 어린 날의 인연들과
멀리 멀리 떨어져나갔다는 사실이.
서로 아무 변명도 시시비비도 할 수가 없어, 더 아련하게 남아버린 가을 하늘 잠시잠깐 구름처럼 저물어버린 지난 관계들 앞에 나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내 소중한 친구들이여.
그렇게
충분히 다시 걸어볼 수 있는 전화, 툭 하고 보내볼 수 있는 메세지를 망설이다 끝내 말아버리곤 나도 그쪽도 서서히 고요해져 갔다.
나는 이 묘한 시간차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고민을 토로해보기도 했다.
서로 바빠진 거죠 뭐. 어떻게 늘 같겠어요.
로렌스 씨도 여유가 없는 것 같고.
다들 그래요, 비슷해요.
과연 내 깊은 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체념과 비슷한 말들이었다. 언제까지 중고등학교 시절의 꽁냥꽁냥하고 아기자기한 우정을 기대하겠어.
대충 마음을 네모로 세모로 접어두고도 못내 서운하고 좀 아팠다.
한가롭고 조용하며 단순하고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는 시간들이 늘수록
아, 수상했다. 외로움이라고도 서운함이라고도 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삐죽삐죽 올라올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뭐해?’ 하고 싶은 마음이
그냥 뻗어나가지 못하고 참고 참고 참아졌다. 이제서야 알아채지만 그건 무언가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자 했던, 보통과는 다른 마음이었던 것이다.
눈물 주르르 흐르는 이별같아 문득 전활 걸고 싶지만, 아…이 모든 것이 우리 모두의 변화이고 뭐가 됐든 각자의 다른 길을 준비하는 때인 것을.
그래서 그렇게 손에 잡히지 않고 답답했구나. 이제는 통로가 같지 않아 훤히 볼 수 없다 보니.
그렇다면 더욱, 간절히 응원하는 맘과 기꺼이 돌아서겠다는 결심으로 우리 각자의 길 앞에서 망설이지 말아야 했구나.
서둘러 안녕히 조금 더 함께일 때보다
홀로 우선해야 할 것들을 향해.
우리는 어쩌면 엉겨붙어있던 오랜 연의 끈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털어내며 사사로운 기억과 추억과 습관들을 잘 다듬어 보관한 후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느만큼은 잘 모른 채, 단정한 축하와 따뜻한 인사 정도를 건넬 만큼 거리를 넓히며 그 간격을 인식해야 하는구나.
또 그러면서, 이렇게 삶의 방향이 조금씩 각을 틀어 자리를 옮길 때마다 느끼던 낯선 감정들을 익숙하게 받아내고
무한한 곳으로 새 세계를 꾸리러 길을 나서야 하는 거였어. 온전히 홀로 걸어나가야 하는 시간들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시끌벅적했던 나의 세계, 여전했고 꾸준했고
모난 데 없이 행복하고 따스했던 우리에게도 밉살맞은 끝이 있었음을.
무색해진 메시지 창, 게시물이 뜸해진 인스타그램, 굳이 찾아보지 않는 블로그. 바뀌었다 하면 따라라라 오 이거 뭐야 손가락 바쁘게 하던 카톡 프사도 누르지 않는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얼굴들, 너, 들의 팔, 손, 머리카락, 표정들. 우리의 단절 앞에서 부끄럽고 구구절절한 ‘동창 손절기’같은 거나 쓰고 있는 나.
이런 나는 당장은 이 모든 남은 것들이 내게 주려는 게 무엇인지 또 그게 있기는 한지...회의적일 수밖에 없지만 어렴풋이, 이젠 그들과 연결되는 대신 생애 처음 들어서보는 어딘가에 닿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할 것이며 더이상은 시시껄렁한 감상에 젖어 고매한 척 하면서 사실은 원망에 가까운 푸념을 하는 것은 중단해야 할 것이다.
변화와 변화와 변화만이 필요했던, 어쩌면 닳고 닳았을 내 내면이 쉽게 결단하지 못하고 녹슨 관성에 매여 갈피를 못 잡을 때 내게 간절히 필요했던
가장 단호하고 신속했던 실질적인 현상들이 아니었을지. 이제는 찬찬히 나와 내가 대면할 순서임을 인식한다.
그리고 늘 안녕하기를. 나와 그들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