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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Dec 20. 2020

악마의 손을 잡는 사람은 평범하다

<손 더 게스트>: 그럼에도 잡지 않는 사람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범인 스포일러 x)


그것은 동쪽 바다 깊은 곳에서 온다



그 유명한 <손 더 게스트>가 넷플릭스에 드디어 들어왔다고 해서 정주행 했다. 예전에 띄엄띄엄 본 기억이 있는데, 정주행을 하면서 보니 다시금 새로웠다. <검은 사제들> 이후로 한국에 조금씩 나타난 엑소시즘 영화/드라마 중 하나다. <손 더 게스트>가 한국의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엑소시즘을 합친 점이 특이하기는 하다. 그러나 <손 더 게스트>는 단순히 동쪽 바다에서 오는 귀신 박일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귀신보다도 무서운 사람들의 속내, 그리고 그에 맞서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인간의 마음을 잡는 건




사건의 시작은 20년 전, 동해 바닷가에 있는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다. 어린 윤화평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시작된, 큰 귀신 ‘손’에 빙의된 사람들. 윤화평은 그중에서도 귀신에 예민한 영매로 큰 귀신 ‘박일도’의 타깃이 된다. 겨우 구마 의식과 굿으로 큰 귀신 박일도를 윤화평의 몸에서 내쫓지만, 그전에 박일도는 이미 윤화평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죽이고 만다. 그 이후에도 박일도는 윤화평의 집을 찾아온 구마 사제 최 신부의 몸에 들어가 최 신부의 가족, 그리고 그들을 구하러 온 경찰을 죽이고 사라진다. <손 더 게스트>의 세 주인공인 윤화평/최윤/강길영의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 이후로 박일도는 잠잠해지지만, 택시 기사가 된 윤화평은 할머니와 어머니를 죽인 박일도를 찾으러 다닌다. 그리고 20년 만에 박일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박일도의 기행을 통해 박일도의 행동을 읽을 수 있는 윤화평, 구마 사제 최윤, 그리고 강력계 형사 강길영이 모인다. 그들은 박일도에 빙의된 자들을 마주하면서 자신들의 과거도 마주한다. 


그러나 <손 더 게스트>를 보다 보면 귀신 박일도보다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박일도는 사람들의 약하고 악한 마음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휠체어에서 생활한 사람부터 직장 내 따돌림, 가정폭력, 뺑소니 사건까지 세 사람이 마주하는 인간의 내면은 다양하다. 그래서 박일도는 말한다. 자신이 바다로 올라온 게 아니라, 인간의 약하고 악한 마음이 자신을 자꾸 불러낸다고. 


 살아남은 아이들이 손을 잡는 법



다른 스릴러물에 비하면 <손 더 게스트>의 3인방은 처음부터 서로 잘 공조하지는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영매-구마 사제-강력계 형사의 조합이 처음부터 잘 굴러갈 리가. 다혈질 형사 강길영은 박일도의 존재를 잘 믿지 않고, 다혈질인 윤화평과 냉정한 개인주의자 최윤 역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향이 다르다. 그뿐인가. 박일도에 의해 빙의된 윤화평, 그리고 박일도에 의해 가족을 잃은 최윤과 강길영은 서로에게 지독한 애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꾸로 <손 더 게스트>의 묘미는 이 세 사람이 힘을 모으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강길영이 처음으로 윤화평, 최윤과 함께 구마 의식에 참여하는 순간은 짠하다. 직장 내 따돌림으로 인해 남편을 잃고 울분을 토하는 여인에게, 가족을 잃은 최윤과 강길영은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라는 말한다. <손 더 게스트>에서 빙의된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은 구마 의식뿐만이 아니다. 바로 빙의자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빙의자에게 힘이 된다. 그리고 윤화평, 최윤, 강길영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며 귀신 ‘손’이 아닌 서로의 손을 잡는다. 



개인적으로는 강길영 캐릭터가 참 좋았다. 호불호가 있는 캐릭터이지만, 이런 다혈질 강력계 여성 형사 캐릭터를 시도한 한국 드라마가 그동안 별로 없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하지. 다혈질 강력계 남자 형사는 개성인데, 성별만 바뀌어도 민폐라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 


악마도 결국은 사람인 것을



<손 더 게스트>의 박일도는 꽤 오랜 시간의 역사를 자랑한다. 윤화평의 할아버지는 60년 전에 박일도 귀신을 처음으로 목격했다고 증언한다. 그렇게 박일도의 역사를 뒤쫓아가는 3인방이 마주하는 박일도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넓다. 20년 전에 사람을 죽인 국회의원 박홍주, 박홍주가 연관된 자선단체 나눔의 손, 알듯 말 듯 수상한 최윤의 스승 양 신부까지. <손 더 게스트>는 박일도를 쫓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 특히 지방 사회의 생태학을 잘 보여준다. 3인방이 박일도를 추적하는 과정 역시 국회의원 박홍주의 방해로 종종 막히고는 한다. 


3인방이 추적 끝에 알게 된 박일도의 정체는 꽤나 의미심장하다. 박일도의 빙의자들은 항상 뒷목을 비정상적으로 긁고, 목이 말라 물을 엄청난 양으로 마시며, “박일도!!”를 외치며 오른쪽 눈을 찌른다. 그리고 구마 의식이 성공할 경우에는 짠 물을 내뿜는다. 이러한 박일도의 특성은 살아있던 인간 박일도에서 유래된다. 국회의원 박홍주의 집안에서 일제강점기 시대에 태어난 박일도는 집안의 종들을 마구 죽일 정도로 잔인했다. 그리고 그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이후 가족들을 죽이고 오른쪽 눈을 찔러 바다로 들어갔다는 말 역시 심상치 않다. 일제강점기에 큰 집안을 유지하고 일본 유학이 가능했던 집안이라면 높은 확률로 친일파 집안일 테다. 즉, 간접적으로 <손 더 게스트>는 과거나 지금이나 권력을 유지하며 사건을 덮는 친일파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다. 빙의 호러물에서 이런 역사까지 다루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더 놀라기도 했다. 



손은 다시 올 것이다




아직 <손 더 게스트>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조금 많이 잔인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드라마다. 물론 안심할 수는 없다. 60년 전에 박일도가 인간의 몸에 적응하지 못하여 바다로 돌아갔던 것처럼,  20년 전에 윤화평의 친척 몸에 들어간 것처럼 ‘손’의 여정은 언제 다시 반복될지 모른다. 인간은 언제나 악한 마음을 가진 나약한 존재니까. 드라마 상에서 박일도의 장황한 설명은 아쉽지만, 만약에 시즌 2가 나온다면 <손 더 게스트>가 조금은 은유의 미학을 살리는 드라마가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그런데 김홍선 감독이나 권소라/서재원 부부나 다 다른 프로젝트로 바쁜 거 같으니…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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