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의미 없다
복학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일 년 휴학할 걸.
이렇게 듣는 과목들이 하나도 재미없는 학기가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돈 모아서 해외여행이나 훌-쩍 떠날 걸. 분명 15학점인데 반강제로 듣거나 필수이거나 재수강인 과목들만 있으니 재미있을 리가.
9-10월 내내 중도휴학 생각을 했다.
생각만 했다. ‘우물쭈물하다 이리 될 줄 알았다.’
18학점 5전공 1교양에 학생회 선거본부까지 했던 작년 2학기도 분명히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게 많고 재미있던 학기로 기억하고 있는 건, 그래도 재미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다니면서 빡센 걸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예술과 사회 수업의 기말레포트를 쓸 때 무용 단체 인터뷰를 했던 기억, 서양 여성사 교재였던 <아내의 역사>를 읽고 <아름다운 외출> 번역자셨던 교수님과 토론하던 기억, 여성 운동을 같이 하던 친구들과의 술자리, 한국국제근현대사 수업에서 해방촌 여성을 처음 연구했던 캐서린 문의 <동맹속의 섹스>를 처음 읽었던 기억, 다른 수업들의 기억을 종합하여 해방촌을 비롯한 세계화와 여성 인권 주제로 사회계층과 불평등 레포트를 쓰던 기억.
이렇게 한 학기에 추억이 많은 걸 보면 분명히 행복하고 동기가 있었다. 지금은 그 동기도 없다.
답이 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 진로 고민은 여전히 답이 없다. 여전히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큰 목표에는 변함이 없는데, 무슨 수단을 써야할 지 고민이다. 지금까지 쭉 생각해왔던 대로 학계로 가야할지, 비평가나 기자가 될지, 창작자가 될지 고민중이다. 휴학을 하면서 어느 순간 ‘글을 써야하는데 꼭 학계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해버렸고, 복학하고 나서도 한참 방황했다.
어서 독립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순간 엄마가 주변에 결혼하는 언니 오빠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미국에서 박사과정하는 오빠가 아는 집안 딸과 결혼한다는 이야기,
의대 갔다가 지금은 레지던트하는 언니가 돈 많고 커리어 서포트 잘하는 사업가와 결혼한 이야기가
식탁 위로 오간다.
엄마는 결혼식 전부터 사돈 부부와 친하게 지내는 집안의 이야기를 조잘조잘 말한다.
나는 그 이야기가 미국에서 혼자 살면서 결혼이 한번 쫑난 30대, 나의 언니를 향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 사회의 이성애, 유성애 중심적 연애/결혼/가족 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악다구니 지르던 나에게도 향한다는것도 알고 있다.
나는 동시에 나의 생각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화내던 엄마의 모습도 기억한다.
“요즘 애들 연애 안하면 걱정돼(성소수자일까봐).”라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시험기간에 펑펑 울었다.
퀴어문화축제에서 자원활동가를 하며 만났던 사람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앳된 동성 커플,
히잡을 쓰고 있던 여성과 한국 여성 레즈비언 커플,
“자기네는 얼마나 공자맹자처럼 살았다고 너한테 지x이냐” 우리에게 말하던 할아버지….
그후 10월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왼쪽 가슴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아는 내과가 없어서 걱정이다.
10년 후에 나는 어떻게 살지, 당신은어떻게 살지,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어느 친구와 농담하던 것처럼 ‘시시한 어른’이 되어버렸을까? 시시한 어른이 되기조차 너무 힘든 세상에 살고 있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아직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은데, 지금 하는 노력들이 다 의미 없는 것처럼만 느껴진다.
2017년은 2016년과 또 다른 슬럼프다. 2016년은 괴로워했는데, 2017년은 의미를 더더욱 잃어버렸다.
이렇게 의미만 잃어버리다 2017년이 다 지나가버릴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