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여자가 성장하며 잃는 것들
※ 브런치 무비 패스로 관람한 영화입니다.
※ 강려크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섬세한 상실
이 영화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동성 친구와 보러 갔다. 같이 보러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휴학을 하고도 대학원 수업을 청강하고 일하는 친구였는데, 지독한 감기에 걸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는 곤히 자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다 끝났을 때 우리는 같이 울고 있었다.
제목에 걸맞게 이 영화는 두 여성 베스트 프렌드를 주인공으로 한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 칠월과 자유로운 날라리 안생은 열세 살에 처음 만나 14년 동안 우정을 유지한다. 포스터에서는 ‘아름답게 물들일 감성 소설’, ‘추억의 종합 선물세트’라 말하지만, 제발 한국 홍보사들 이런 마케팅 그만 해주라. 이 영화는 흔히들 생각하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류의 영화가 아니란 말이다.
증국상 감독은 필모를 보아하니 원래 배우였다가 이번에 감독으로 데뷔한 듯하다. 그리고 그는 칠월과 안생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양극단이라고 말한다. 극과 극에 있으면서 베프이고, 동시에 미친듯이 싸우는 그들은 아름답지 않은 구석도 많다. 둘은 서로를 질투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낮추어 보기도 한다. 그러다 서로를 다시 끌어안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상실에 대한 영화다. 여성이 살면서 무엇을 잃고 얻고 다시 잃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칠월과 안생>이라는 인기 웹소설을 안생이 차근차근 읽으며 시작된다.
브래지어라는 은밀함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다. 한국의 국민체조를 연상케 하는 운동장에서 두 사람은 슬그머니 벗어나고 학교의 비상벨을 울려 난장판을 만든다. 비상벨을 치는 사람은 안생이었고, 두 사람은 비를 맞으며 칠월의 집으로 돌아간다. 칠월은 다정한 두 부모님이 계신 중산층 가정의 딸이고, 안생은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집안을 돌보지 않는다. 안생의 가정 형편을 안 칠월의 부모님은 안생을 챙기기 시작한다.
필자는 이 영화가 페미니즘적으로 보아도 흠잡을 데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두 사람의 차이를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키워드가 브래지어다. 다정한 어머니를 둔 칠월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브래지어를 찼다. 같이 목욕을 하러 들어간 안생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것을 보고는 엄마가 해주지 않냐고 물어본다. 중산층 기혼 여성인 칠월의 어머니는 말한다. 여자는 불편한 것에 익숙해질 줄 알아야 한다고.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결국 집을 나가는 안생은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서로 가슴이 얼마나 커졌는지 보여주는 씬에서도 아역배우들을 배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칠월은 누군가의 그림자를 밟으면 그 사람이 멀리 떠나가지 않는다며, 안생의 그림자를 밟으려 한다.
멀어지는 너
두 사람은 성장하여 고등학생이 된다. 칠월은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안생은 직업학교에서 미용을 배운다. 안생은 밤에는 바에서 바텐더 일로 돈을 벌고 기타 치는 남자를 만난다. 칠월은 같은 학교의 반듯한 남학생을 만난다. 그가 바로 안생과 칠월의 첫사랑, 가명이다.
안생은 질투가 났는지 가명이 어떤 자식인지 보러 간다. 칠월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해서 보러 갔는데, 오히려 끌리는 쪽은 가명이다. 어찌 됐건 칠월은 도서관에서 가명에게 고백하고 둘은 사귀게 된다.
그러나 세 사람은 이상한 삼각관계를 가지게 된다. 분명히 공식적으로 사귀는 건 칠월과 가명인데, 가명과 안생 사이의 텐션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원래부터 극과 극이었던 두 사람은 가명으로 인해 더 긴장감이 생긴다. 칠월은 가명이 안생에게 가버리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해한다. 사실 가명은 안생에게 알게 모르게 마음을 드러낸다. 부모님이 준 목걸이를 안생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안생도 이를 거절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남자 친구와 베스트 프랜드의 텐션을 칠월도 눈치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안생이 기타리스트 남자 친구를 따라 북경으로 떠날 때 칠월은 울면서도 안심한다. 그러나 가명의 목걸이를 걸고 있는 안생을 보자마자 칠월은 걸음을 멈춰버린다. 그저 기차를 타고 떠나는 안생을 바라보기만 한다.
안생은 북경으로 떠난 후에도 계속 떠돌아다닌다. 북경에서 바텐더로 계속 일을 하다, 기타리스트 남자와 헤어지고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러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 지쳐버린 안생은 (만) 스물셋에 고향에 돌아가기로 한다.
옆에서 보던 친구가 그러더라. 떠돌아다니는 것도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반면 칠월은 고향에서 떠나지 않는다. 칠월은 가명과 같은 대학에 입학하고, 많은 남자를 사귄 안생과는 달리 가명과 대학 cc를 하며 오랜 관계를 이어나간다. 글을 좋아하고 중문학을 전공한 칠월은 전공을 살리지 않고 은행에 취직한다. 보수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칠월은 성인이 되어서도 "여자의 삶은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가는 것 밖에 없다"는 어머니의 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안생은 칠월에게 계속해서 우편을 보냈고, 두 사람은 직접 마주하지 않고도 우정을 유지한다. 칠월이 고향을 떠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텐션은 우편을 통해서도 유지된다. 안생은 5년 동안 우편에서 가명의 안부를 묻는다. 두 사람은 극으로 치닫는 서로의 삶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안생이 고향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이고, 직접 서로를 마주하자 더 치닫기 시작한다. 칠월의 부모님은 여전히 안생을 아끼고, 두 사람은 예전처럼 같이 목욕하지는 못한다. 안생은 여전히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우정여행을 떠난 두 사람은 처음부터 삐걱거린다. 안생은 싼 여관을 찾아가고, 칠월은 차라리 돈을 더 쓰고 말겠다며 고급 호텔로 안생을 끌고 간다. 칠월은 호텔 바에서 술내기를 해서 공짜 술을 얻어내는 안생을 경멸한다. 칠월이 안생에 대한 우월감을 처음으로 표출할 때가 바로 이 우정여행이다. 칠월은 사회의 기준에 맞춘 자신의 삶에 우월감을 느낀다. 안생은 ‘학교에서만 있었던 너는 몰라’라고 쏘아붙이지만 칠월만큼 모질게 굴지는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은 싸우고 갈라선다. 연락 역시 끊긴다.
두 사람이 만나는 건 몇 년이 지나서다. 그전에 안생과 가명이 다시 만난다. 고향에만 있는 생활이 지겨웠던 가명은 북경으로 떠났고, 거기서 안생을 만난다. 가명은 여전히 우유부단하다. 우유부단한 엘리트 남성의 표본. 사실 이런 남자가 제일 나쁘다. 가명은 안생에게 끌리면서도 현실 때문에 칠월을 선택했다. 그러면서도 안생에 대한 미련은 끝내 버리지 못했다. 안생은 가명에게 다가가지 않지만, 북경에서 자신의 애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어쩔 수 없이 가명에게 기댄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던 칠월은 처음으로 북경으로 가명을 찾아가고, 세 사람은 오해에 빠진다.
이 사건은 칠월과 안생이 서로의 바닥을 보게 되는 사건이다. 두 사람은 가명의 누추한 화장실에서 샤워기를 틀어놓고 싸운다. 칠월은 자신의 우월함을 안생에게 말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열등감의 분출이다. 이때 다시 두 사람은 브래지어를 가지고 싸운다.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북경에서 직장을 다니고 정착한 안생은 브래지어를 갖고 있다. 안생의 검은색 브래지어를 본 칠월은 분노한다. 자유로운 안생이 이제 구속되어서 슬픈 것인지, 가명을 빼앗기리라는 불안감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칠월은 안생 앞에서 옷을 벗고, 칠월은 누드색의 평범한 브래지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가명은 이런 거 좋아해.”
‘어머니가 강요하던 브래지어’를 쓰던 칠월은 어른이 되어 ‘가명이 좋아하는 수수한 브래지어’를 착용한다.
가부장제가 어떻게 여성을 길들이는지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나.
그녀가 해방되는 순간
두 사람은 다시 갈라지지만, 두 사람의 삶은 뒤섞이기 시작한다. 가명은 다시 마음을 붙잡고 칠월에게 결혼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가명은 결혼식 날에 나타나지 않는다. 칠월은 은행에 사직서를 내고 대학생 시절부터 길러온 머리를 다시 고등학교 때처럼 자른다. 칠월의 억압자였던 어머니는 칠월을 다독인다.
“힘든 삶을 선택한다고 해서 꼭 불행해지는 건 아니야. 그저 조금 힘들 뿐이지. 그런데 말이다, 여자들은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모두 힘들게 되어 있어.”
칠월은 5년 동안 모은 안생의 엽서를 보고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떠도는 삶이 생각보다 자신과 잘 맞다는 것을 깨닫는다.
반면 안생은 다시 북경에서 자리 잡는다. 가정적인 남자를 만나 동거를 하고, 가정을 꿈꾼다.
두 사람의 삶은 섞이고,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다.
헤픈 엔딩
칠월이 쓴 <칠월과 안생>에서 칠월은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랬는가? 정말도 사람은 서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까? 그들은 서로의 그림자를 밟았을까?
이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현재 시점의 안생을 보면 대충 눈치챌 수 있다. 두 사람의 결말은 그렇게 해피엔딩이 아니다. 에픽하이의 노래처럼, 헤픈 엔딩에 가깝다.
안생은 가정을 같이 꾸리고자 한 남자와 헤어지고 여자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 그 아이는 칠월과 가명의 아이다. 결혼식 하루 전에 결혼하지 말자고 제안한 것은 칠월이었다. 드디어 안생의 발걸음을 쫓아간 칠월은 뒤늦게 가명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안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를 선택한다.
안생이 원한 결말은, 칠월이 아이를 자신에게 맡기고 다시 떠나는 결말이었다. 안생이 가명에게, 세상에게 말하는 결말은 그런 결말이다. 그러나 너무 이상적이지 않은가. 이상하지 않나.
칠월은 다른 곳으로 떠났다. 안생은 기타리스트 남자 친구가 좋아하던 기타리스트처럼 27살에 죽고 싶어 했다. 그러나 불나방처럼 27살에 떠나버린 사람은 칠월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그림자를 밟다가 칠월이 사라졌다. 그들은 이미 성장하며 많은 것을 잃었다. 그래도 안생은 칠월의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결말을 짓는다.
여행하는 칠월은 행복해 보인다. 해피도 아닌, 새드도 아닌, 헤픈 엔딩처럼.
PS 1. 설마, 자기 아이 찾아온 가명이 다시 안생에게 다가오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러면 안 돼.
PS 2. 안생 역의 주동우 배우. 꼭 기억해두겠다. 어쩜 그리 매력적이지. 선악을 오가는 페이스가 장난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