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익숙하나 행복한 각자의 사정
※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한 영화입니다.
※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헬멧 밖의 세상으로 나올 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영화다.
몸 컨디션도 안 좋고 학기가 끝난 지 일주일 만에 계절 학기를 다니고 있어서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힐링이 되는 영화였다. 익숙하고 뻔하지만 감동은 사그라들지 않는 따뜻한 영화. 자칫하면 뻔하고 누군가를 대상화할 수도 있는 소재지만 영화 자체가 그 흐름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안면기형 장애로 인해 27번 수술을 받은 어기가 주인공이기는 해도 주변 인물들에게 하나하나 돌리는 시선이 따뜻하다.
안면기형 장애로 인해 집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하고 엄마 이사벨에게 홈스쿨링을 받던 어기는 5학년이 되어서야 학교로 오게 된다. 집 밖으로 잘 나오지는 못하나 자신의 얼굴이 특이하다는 점을 태어날 때부터 알던 어기는 누나 비아의 친구 미란다가 준 헬멧을 항상 쓰고 다닌다. 심지어 부모님과 함께 학교를 처음 가는 날조차 우주인 헬멧을 쓰고 간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어기는 항상 어둡고 상처만 많은 아이 같지만, 어기는 생각보다 강하다. 어기는 과학을 좋아해서 NASA를 동경하며,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바람에 사람들의 신발을 눈 여겨보는 아이다. 어기를 처음 본 아이들은 겁을 먹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어기는 차츰차츰 적응한다.
진짜 나쁜 사람은 없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영화는 신선한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많이들 익숙할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과 다르게 만드는 요소는 관점에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어기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기의 주변 인물들을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기는 좋은 가족들을 곁에 두고 있다. 그래도 뉴욕의 중산층 가족에서 태어났으며,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부모님과 친절한 누나 비아가 어기를 항상 지원해준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인물들이지만, <원더>는 어머니 이자벨과 누나 비아의 목소리도 들려준다. 막 중학교에 들어간 어기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비아. 비아는 어기와 다르게 평범한 학교 생활을 하는 학생이다. 4살 생일에 동생을 달라고 소원을 빌었던 비아는 어기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질투하기도 한다. 이자벨과 네이트는 비아를 세상에서 가장 이해심 많은 누나라고 말하지만, 비아가 원하는 건 온 우주가 어기 중심으로 돌아가는 엄마 이자벨이 한 번만 자신을 제대로 봐주기를 원할 뿐이다. 어기가 태어날 때 석사 학위를 포기한 엄마가 다시 자신의 일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기가 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친구들에게도 영화의 시선이 닿는다. 부자 집안에 선생님들 앞에서는 착하지만 어기에게는 못된 짓을 하는 줄리안, 어릴 때부터 아역배우로 자라온 샬롯, 그리고 처음에는 그저 부모님과 선생님의 부탁 때문에 어기랑 어울리기 시작하지만 진짜 친구가 되어가는 잭윌. 잭윌은 전형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캐릭터다. 어기랑 놀기 시작하면서 맘을 열지만 줄리안 같은 아이들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다가 어기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잭윌은 어기의 마음을 다시 여는 데 성공한다. 그것도 어기가 좋아하는 게임과 과학을 통해서. 영화평 중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잭 윌처럼 키우고 싶다는 평이 있던데 동의한다.
비중이 크지는 않으나 인상 깊게 보았던 캐릭터는 비아의 절친 미란다다. 비아는 자신의 가족환경을 은근히 힘들어하지만,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와 작은 아파트에 사는 미란다는 오히려 비아의 단란한 가족을 부러워한다. 여름 캠프에 다녀와서 머리를 염색하고 학교의 ‘쿨한’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미란다는 오히려 비아를 그리워한다.
이 영화에서는 줄리안도 미란다도 다 악역은 아니다.
진짜 나쁜 사람은 없다. 그저 각자의 사정이 있을 뿐.
익숙하나 진부하지 않은 이유
<원더>는 익숙한 영화다. 그러나 진부하지는 않다. 익숙하나 진부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본다면, 필자는 이 영화의 흑인 캐릭터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어기가 처음 다니게 되는 학교는 어찌 됐던 좋은 사립학교다. 앞서 언급한 인물들 대부분이 백인 중산층 내지 부유층에 속하는 인물들이고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런 류의 영화에서 흑인 캐릭터, 특히 젊은 흑인 남성 캐릭터가 대상화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어기의 담임 선생님 다비드 딕스는 젊은 흑인 남성이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 남성은 인종적으로나 젠더적으로나 교사 중에서 가장 적은 계층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더>에서는 월 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였다가 영문학과 교육에서 꿈을 찾고 어기에게 손을 내미는 긴 머리의 교사가, 무려 ‘젊은 흑인 남성’이다. 지금까지 미국 영화에서 등장했던 흑인 남성 캐릭터들과 차별화되는지 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으레 ‘백인 남성’이라고 전제되던 캐릭터들이 인종적 스테레오 타입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
비아가 미란다와 멀어지고 비아에게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고 사귀게 되는 저스틴이나, 어기가 잭윌과 멀어진 후 먼저 손을 내미는 썸머도 동일한 의미로 좋은 캐릭터다. <원더>는 영화의 취지와 맞게 인종적 맥락에서도 누군가를 대상화하지 않는다.
판타지인들 어때
어기는 줄리안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과 친해지고 학년 말에는 학교에서 상까지 받게 된다. 물론 이런 힐링 영화들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판타지인들 어때. 더군다나 <원더>의 판타지는 모두를 주인공으로 삼는 덕에 마냥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그저 은은한 울림이 있을 뿐.
PS 1. 어기의 아빠 네이트는 철부지 아빠지만 귀엽다.
PS 2. 진정한 씬 스틸러 반려견 데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