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Ever After?

<12 솔져스>: 치밀한 할리우드식 제국주의

by 유녕

※ 브런치 무비 패스로 관람한 영화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솔직히, 까려고 봤다


세로 포스터.jpg


필자의 <누군가의 영화> 매거진을 지속적으로 보았다면 알겠지만, <12 솔져스>는 필자가 작년 하반기부터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본 영화들과는 성향이 다르다. 그전에 보았던 영화들은 <더 테이블>, <아이캔 스피크>, <우리들의 20세기> 등 잔잔한(?) 일상물들이 많았다. 필자는 밀리터리 매니아도 아니고 전쟁 영화를 많이 본 편도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볼까 고민을 좀 했다. 지금까지 후기를 쓴 영화들하고는 달라서 재미있을 거 같은데 글이 잘 안 나오면 어떡하지? 이런 류의 할리우드 영화를 비판하는 글은 한번 써보고는 싶었는데.


그러다가 시사회 신청 버튼을 눌렀고, 아끼는 동생이랑 보러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

<12 솔져스>를 본 것 자체는 잘했지만,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쓰긴 써야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리


<12 솔져스>는 9.11 테러 이후 비밀리에 진행된 11일간의 미군 비공식 작전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배경만 보아도 미국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전쟁 영화일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마냥 단순하게 미국 찬양 영화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상업 영화 치고는 ‘객관적인 척’은 적당히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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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 백전백승’은 유명한 사자성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뻔한 말 같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실천하기 힘든 사자성어이기도 하다. 필자는‘지피지기 백전백승’이 <12 솔져스>를 가장 잘 표현하는 사자성어라고 생각한다. 영화 안에서나, 밖에서나.


미치 넬슨 대위(크리스 헴스워스 역)은 작전 팀 안에서 스펜서 중위(마이클 섀넌 역)보다 나이는 훨씬 적지만, 그는 합리성과 도전 정신을 모두 가진 리더로 나온다. 그는 분명히 약점이 있는 리더다. 미군 안에서는 현장 경험이 없다고 무시당하고, 북부동맹에서 협동해야 할 도스툼 장군(네이비드 네가반 역)조차 처음에 팀을 만났을 때 스펜서 중위가 팀 의리 더인 줄 알고 환영한다. (영화 보다가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이슬람 문화권에서 볼에 입맞춤을 세 번 하는 행위는 존중,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때 넬슨 대위의 주 무기는 정보력과 판단력이다. 넬슨 대위는 현장 경험은 없을지 몰라도 전략을 짠 경험이 많으며 탈레반 및 북부동맹에 대한 이해도는 뛰어나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도스툼과도 원만한 대화가 가능하며, 도스툼에게 러시아 보드카를 선물하는 배짱도 있다. 이 때문에 남들이 다 무모하다 말하고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 작전을 11일 만에 끝내 버릴 수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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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 백전백승’ 은이 영화에서 넬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관점 자체가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하는 1차원적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일단 칭찬해주고 싶다. 물론 영화 초반에는 할리우드 애국주의가 전형적으로 등장한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는 아버지 혹은 남편을 배웅하는 가족들은 이런 전쟁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집 안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히스패닉 부부는 좀 아니지 않니 현실감이 없잖아. 전쟁 영화인 만큼 남자 군인들의 호모 소셜한 분위기도 없잖아 있다. 그러나 <12 솔져스> 아프가니스탄 및 이슬람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전제로 만들어진 영화다. 넬슨 대위도 그렇고 추후에 이야기할 도스툼 장군도 그 이해를 기본으로 하는 캐릭터다. 그렇기에 할리우드 특유의 미국 선민의식이 더 교묘하게 적용되기도 한다.


제국들의 무덤 속 도스툼


두르툼과 햄식.jpg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 포인트를 하나만 뽑으라고 하면 도스툼 장군이다. 도스툼 장군 캐릭터를 그 정도로 잘 잡지 않았다면 <12 솔져스>는평작에 그쳤을 거다. 많은 언어를 할 줄 알고 북부동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넬슨과 묘한 긴장감과 동료애를 연출하는 도스툼은 어느 정도 아프가니스탄 현장 정서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분명 넬슨에게‘살인자의 눈’과 ‘전사의 정신’을 말하는 도스툼 장군은 오리엔탈리즘이 다소 보이는 캐릭터이고, 작전의 결정적인 순간에서 도스툼은 허둥지둥 대고 넬슨을 선두로 북부동맹 전사들이 따라가는 그림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많은 전쟁 영화들이 그렇듯이 <12 솔져스>는 팩션(faction)이고,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인 도스툼 장군의 장점을 잘 살렸다. 교육받은 여자아이의 여성을 잔인하게 죽이는 라캄과 여성이 교육받던 시절을 회상하는 도스툼은 극명한 대비 구도를 이루고, 이는 미국 및 자유 진영이 탈레반을 꼭 물리쳐야 하는 명분을 제공한다. 그래 봤자 미국 너네 OECD에서 성평등 지수 중간이거든. 아 맞다 한국은 거의 꼴찌지.


도스툼.jpg 실제 압둘 라시드 도스툼


그렇다면 실제 도스툼 장군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실제로 탈레반의 엄숙주의를 반대했고 여성의 권리 역시 어느 정도 인정한 인물이다. 그러나 영화 속 도스툼이 말하듯이 아프가니스탄은 ‘제국들의 무덤’이고, 작전을 진행하러 온 미군들과 달리 매일 전쟁 속에서 사는 사람들 은마냥 깨끗할 수는 없다. 도스툼은 미국 및 자유진영의 도움으로 2014년 이후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제 1 부통령이 되었지만, UN에서 지속적으로 인권유린 혐의 및 아편 거래에 대해 조사를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12 솔져스>에서는 실제 도스툼의 이런 면모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물론 전략이다.


해피엔딩일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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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솔져스>의 엔딩은 해피엔딩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작전을 12명의 병사들은 이루어냈고, 허리를 다친 스펜서 중위도 무사히 헬기를 타고 독일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비밀작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팀 멤버들은 큰 보상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집에 돌아가게 되지만, 그래도 영화는 넬슨이 아내와 딸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장면과 함께 끝난다. 실제로도 넬슨 대위와 도스툼 장군은 현재까지 오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는 자막과 함께.


그런데 해피엔딩이던가? 진짜로?


그러나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왜 <12 솔져스>의 시점은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인가? 무려 1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중에서도 왜 하필 초반인가?


사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미국에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오히려 베트남 전쟁과 같은 트라우마가 됐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01년 이후로 지금까지 끝나지 않은 지긋지긋한 전쟁이고, 현재 시점에서 미국이 탈레반을 상대로 완전한 승리를 거둘 가능성은 미미하다. 그나마 오바마 정권 때 미군이 적당히 전쟁을 마무리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수 있었는데, 그 타이밍마저 놓쳐버렸다. 그 결과 미국이나 탈레반 측이나 현재 시점까지 어마 무시한 피해를 입었고, 아프가니스탄 안에서의 내적 갈등은 말할 것도 없다.


미스 사이공.jpg


그러나 미국, 할리우드 문화권은 항상 미국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가까웠다. 특히 미국이 실패한 전쟁을 미화하는 데 미국의 뮤지컬 혹은 할리우드 영화는 효과적인 도구였다.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된 이래 가장 치욕적인 패배로 기억되는 베트남 전쟁도 오리엔탈리즘적 시선과 함께 <미스 사이공>으로 포장되지 않았던가. <12 솔져스>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또 다른 전쟁은 없는가?


전쟁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예산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할리우드와 같이 자본이 많은 선진국 문화권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른 전쟁은 없는가? 누군가의 선민의식이 없는, 전쟁의 참담함을 담은 영화는 또 없는가?


덩케르크.jpg
블랙 호크 다운.jpg


당연히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2017)에서 주인공은 작전을 짜는 ‘높으신 분’들이 아니라 현장의 젊은이들이요, 작은 배를 직접 모는 퇴역 군인이었다. 심지어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프랑스인 군인을 함께 이끄는 모습에서 영국의 민족주의, 국가주의는 쉽게 느낄 수 없다. 결말에서나 느낄 수 있을까? 똑같이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블랙 호크 다운>(2001)은 할리우드식 애국주의가 없다고는 말 못 하여도 주력 헬기의 추락 이후 전쟁 속 동지애와 생존에 초점을 맞추었다. 마지막에 소말리아 현지 아이들이 철수하는 미군을 해맑게 조롱하는 장면은 전쟁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이 영화들은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고 전쟁을 담담하게 전한다.


<12 솔져스>가 눈에 띄는 액션 씬과 장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뛰어난 전쟁 영화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얻은 성과는 있다. <토르>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크리스 헴스워스의 캐릭터 변신을 원하거나 장관으로 가득한 상업 전쟁영화를 보고 싶다면 <12 솔져스>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PS 1. 사실, 이 영화보다도 디테일이 떨어지는 한국전쟁영화들은 많이 반성해야 한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고지전>(2011)은 제외.

PS 2. 맨 앞과 맨 뒤를 장식하는 넬슨 대위의 가족 씬은 크리스 헴스워스와 실제 와이프가 찍었다고 한다. 이런 애처가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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