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나은 자들의 '힐링'

<리틀 포레스트>: 영화화된 삼시세끼

by 유녕

※브런치 무비패스로 본 영화입니다.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트렌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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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리라는 배우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본 영화지만, 나름대로의 기대는 있었다. 일본 영화 원작도 있고 예고나 포스터를 봤을 때 현재 한국사회의 트렌드에 적당히 맞아떨어지는 영화 같았다. 씨네 21 시사평 중에서 ‘태리네 민박에서 식샤를 합시다’라는 문장이 있던데, 정확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힐링 예능 코드는 다 갖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아가씨>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김태리, 응팔 이후 출연작마다 대박을 터트리고 있는 류준열, 그리고 현재 <미스티>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조연 진기주까지 캐스팅도 적절히 익숙하면서 신선하다.


옆에서 보던 친구가 그러더라. 최근에 본 한국 상업영화 중에서 <아이캔 스피크>를 제외하고는 제일 마음에 들었다고. 폭력적이고 남성 캐릭터만 주목받는 알탕 영화만 보다가 요리와 영상미가 있는 일상물 영화를 보니 마음이 편하다면서.


분명 이 영화는 트렌디하다.

그 이상을 보여주는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익숙한 판타지, 미숙한 인물들


곡식을 심는 혜원.jpg


<리틀 포레스트>는 플롯이 복잡한 영화는 아니다. 임용고시에 떨어진 혜원(김태리 역)이 남자친구와도 연락을 끊고 시골 고향집에 돌아와 일 년을 농사와 요리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복잡하지 않은 플롯을 채워주는 것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요리, 친구들과 오구(혜원이 키우게 된 강아지)다. 고3 생활이 끝난 후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간 엄마와 헤어진 후, 혜원은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가 집에 홀로 내려온다. 임용고시에 혼자 떨어지고 남자친구와 연락을 끊고 혜원이 하는 것은 요리와 농사밖에 없다. 배가 고파서 내려왔다는 혜원의 말에는 뼈가 있다. 혜원은 물가 비싼 서울에서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었고, 당장 집에 오자마자 먹는 것은 밭에서 갓 얻은 배춧국이다. 혜원은 고향에서 머무르는 동안 자신이 서울에서 모자라다고 느낀 것들을 채운다.


<리틀 포레스트>가 보여주는 판타지는 다양하다. 혜원은 고향에 돌아와서 소꿉친구 재하, 은숙과 재회하고 마음껏 추억을 나눈다. 재하는 혜원에게 갓 태어난 강아지 오구를 안겨주고, 혜원은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추억 속의 엄마가 해준 요리들을 재현한다. 꽃 파스타, 꽃 튀김, 직접 만들어먹는 막걸리, 곶감, 부침개, 곶감…. 요리하는 과정과 그 요리들을 재하, 은숙과 나눠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게끔 한다. <리틀 포레스트>의 판타지는 한국 관객들에게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이는 <삼시세끼>, <효리네 민박> 류의 힐링 예능들이 지속적으로 보여준 판타지다. 농촌 판타지, 유사가족 이미지, 쿡방과 먹방, 반려동물 기타 등등.


그러나 <효리네 민박> 속 이효리는 솔직하기라도 했다. 필자는 <리틀 포레스트>를 보는 내내 ‘영화화된 삼시세끼’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국에, 특히 젊은 여성에게 저런 시골은 있을 수가 없다. 그나마 여자 혼자 지내던 일본 원작의 설정을 고모네가 가깝고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오는 설정으로 바꾸었는데도 그렇다. 같이 영화를 본 친구가 말했듯이, 한국의 시골은 여성에게 <리틀 포레스트>보다는 <곡성>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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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이 영화의 판타지가 얼마나 미숙한 지는 서브 인물들이 더 잘 보여준다. 그나마 은숙(진기주 역)은 개그, 감초 캐릭터라는 입지가 확실한데 재하(류준열 역) 캐릭터가 붕- 뜬다. 재하는 혜원과 비슷하게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고, 괜찮은 직장을 다니다가 도시 생활에서 회의감을 느끼고 아버지의 과수원을 이어받는다. 재하는 동시에 혜원에게 계속 호감을 가지는 ‘남사친’이고 시골 생활에 있어서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재하의 대사들은 유난히 교훈적이고 자연스럽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도시 생활의 회의감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혜원의 입장을 심화해서 보여주는 걸로도 충분했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유난히 한국에서 리메이크되는 영화/드라마들은 남성 캐릭터의 비중이 늘어나거나 아예 남성 캐릭터가 새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평했다. 안 그래도 혜원이 어머니에게 느끼는 애증이 원작보다 덜 느껴지는 상황인데, 재하라는 남성 캐릭터가 꼭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


빛나는 건 혜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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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혜원은 빛난다. 혜원은 한국 상업영화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주인공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준비한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주인공은 88만원 세대를 대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모든 농사와 요리를 혼자 책임지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도 연애에 그닥 관심을 보이지 않는 20대 여성 주인공은 한국 콘텐츠에서 흔하지 않다. 연애가 없는 자리는 우정으로 채워지고, 남사친 재하의 관심에도 혜원은 별 반응이 없다. 혜원이 떠난 어머니에게 가지는 애증 역시 값지다. 그래서 조금만 더 잘 표현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아 있지만.


물론 혜원도 판타지다. 현실적으로 친가족이 부재하는데도 서울에서 대학 생활 및 임용고시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만으로 혜원은 평범하지 않다. 대학에 붙자마자 서울 생활을 했는데도 시골에 내려오자마자 요리를 뚝딱뚝딱 잘하는 혜원은 더 현실감 없고. 그러나 여전히 혜원은 한국영화에 필요한 존재다. 혜원 역에 김태리의 캐스팅이 반가운 건 괜한 느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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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의 판타지는 새롭지 않다. 오히려 익숙하고, 어찌 보면 농촌을 타자화하는 판타지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위로받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다. 필자 본인이 작년 하반기부터 계속 몸이 아파와서 쉬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더 와 닿았다. 요리와 농사만 하면서, 원하면 자고 배고프면 스스로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생활이라. 물론 필자가 공감할 수 있는 건 재하, 혜원과 같이 사정이 한치 나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경제, 구직 활동이 전혀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휴학을 결정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런 여유를 가질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상황이 한치 나은 사람들, 혹은 한치가 낫지 않더라도 대리만족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트렌드한 ‘힐링’ 영화일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뛰어난 영상미와 그에 어우러지는 김태리를 보고 싶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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