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니가 새 연애를 시작했고, 언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모님에게 이야기하였다. 부모님은 좋아했다. 언니는 새 애인의 사진을 부모님에게 보내주었고, 엄마 아빠는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나라에 대해서, 직장에 대해서, 성격에 대해서….
참 이기적 이게도, 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는,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다.
내가 차분하다면 언니는 열정적이었고, 내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면 언니는 이상만 바라보았다.
언니는 어릴 적부터 내 우상이었다. 나와는 달리 미국에서 자라나 한국인이 아닌 미국계 한국인인 언니. 나도 나름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지만,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웠던 언니.
고등학생 때 천재 소리를 들으며 피아노를 치던 언니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피아노를 때려치웠고, 미술사와 무용 복전으로 미국 대학을 졸업했다. 아빠는 학부 졸업 후에 바로 미술사 대학원을 가라고 했지만, 언니는 회사에서 몇 년 일하다가 미국도 아니고 유럽 대학원에 진학했다.
남들도, 나도 언니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부모님도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해가 가면 갈수록 달라졌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와 함께 한국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돈을 많이 버는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달라지는 부모님의 태도를 보는 건 해외에 있는 언니가 아니라 나였다.
중고등학생 때 언니를 보면서 깨달았다. 아무리 부모라도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나와 달리 언니는 고등학생 때부터 연애를 많이 했다. 그러나 부모님, 특히 엄마가 언니의 애인을 마음에 드는 꼴을 한 번도 못 봤다. 어떤 남자는 백인이라서, 어떤 남자는 나이가 많아서, 어떤 남자는 비전이 안 보여서, 어떤 남자는 구레나룻을 길러서…. 어릴 때부터 고오급 피아노 교육을 시키고 좋은 미국 대학을 보낸 첫째 딸은, 누구에 견주어도 아깝다고 생각했겠지. 나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내 첫사랑이 영문과라고 싫어했다.
나는 애꿎게도 완벽주의자인 엄마를 닮아 연애를 많이 하지 않았다.
반면 언니는 왕년에 여자 깨나 울렸던 아빠를 닮아 계속 연애를 했다.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언니는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고 했다.
가족 중 나에게 제일 먼저 소개하고 싶다며 설레는 말투로 이야기하였다.
그 남자는 언니의 학부 지도 교수였다. 아빠 뻘의, 아들 둘 딸린 남자였다.
놀랐지만 굳이 말리지 않았다. 말리는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에게 연애사를 다 말하는 나의 언니는, 그 남자도 부모님에게 이야기했다.
그때 이야기는 많이 하고 싶지 않다.
나의 스무 살은
대학 적응과,
부모님과 언니 사이의 조율과,
첫 실연이
한꺼번에 찾아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후 언니는 연애사를 나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섭섭하지만 이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은 빨리 사위를 보고 싶다고 재촉했다.
기왕이면 한국 남자로, 아시안 남자로, 부자로, 학벌도 맞게.
내가 비혼 주의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부모의 영향도 컸다.
엄마 마음에 들 남자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세상 쿨한 나의 언니는 정말 나쁘게 헤어진 게 아닌 이상 옛 연인들과 친구 사이로 지냈는데,
언니가 한국에 올 때마다 부모님은 옛 애인들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나는 그게 단순한 안부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아니라면, 20대 초중반인 내가 비혼 주의자라고 말했을 때 엄마가 그렇게 난리부르스를 치지는 않았겠지.
최근에야 진실을 알았다. 올해 초 한국에서 언니와 언니의 친구들과 만날 때, 언니의 절친 중 하나가 그 남자랑 잘 지내냐 물었다. 약속이 끝난 후, 언니는 그 남자와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다고 이야기했다. 서로 사랑은 하지만 미래는 약속하지 않는다고. 현실적으로 결혼하려면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할 텐데, 아직은 완전히 헤어질 자신이 없다 말했다.
나는 이번에도 언니를 말릴 자신이 없었다.
1-2주 전, 언니는 내가 아닌 부모님에게 먼저 데이트한다고 말했다. 연하 남자와 데이트하고 있다 말하고 사진도 보냈다.
그리고 나에게는, 드디어 그 사람과 헤어졌다고 말했다.
안심했다.
적어도 부모님이 나보고 연애 좀 하라고 갈구지는 않겠구나. 적어도 결혼 생각이 있는 언니가 연애하면, 나는 비혼 주의자라고 해도 좀 괜찮겠지. 반 클리프 아펠 주얼리 디자인을 좋아하는 나보고, “저런 거 선물해줄 수 있는 남자 만나”라고 엄마가 또 말하지는 않겠지. 언젠가는, 내가 꿈꾸는 가족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돈 많이 벌어서 마당 있는 큰 집을 사고, 서른 후반 즈음에 딸을 혼자 입양하고, 강아지들을 입양하고, 하우스 메이트들과 살고 싶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한테 조금이라도 더 자유가 주어질까.
그런데 너무 속상하다. 왜 속상한 지 나도 잘 모르겠다. 자꾸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