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 로맨스>: 2%쯤 부족해
여름은 로코지!
영상 35도쯤은 훌쩍 넘기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덥고,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시원함은 잠시다. 더위를 피해 훌쩍 피서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가까운 곳에서 시원함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는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를 보며 열을 식힐 것이고, 또 누군가는 <맘마미아 2>를 보며 시원한 그리스 해변을 상상할 것이다. 그렇다면 TV에서 피서할 방법은 없을까?
여름 하면 딱 생각나는 드라마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로코)다.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흔한 장르지만, 여름의 로맨틱 코미디가 주는 청량감은 늘 반갑다. 그래서 MBC에서 <검법남녀>의 후속작이 로맨틱 코미디라는 사실이 반가웠다. <사생결단 로맨스>는 로맨틱 코미디 의드라는 점도 좋았지만, 주연 배우들이 더 반가웠다. 지현우는 JTBC <송곳>, SBS <원티드> 등 사회적 이슈를 잘 다룬 드라마들에 계속 출연했고, 이시영은 한국 여성 배우 중 가장 액션 씬에 능숙한 배우 중 하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원래 로맨틱 코미디의 달인들이었다. 지현우는 <올드미스 다이어리>, <달콤한 나의 도시>와 같은 드라마들에서 순정적인 연하남 캐릭터를 연기했고, 이시영은 드라마 데뷔작이 <꽃보다 남자>였다. 그런 두 배우의 조합을 로맨틱 코미디로 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사생결단 로맨스>는 기대되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사생결단 로맨스>가 16회까지 진행된 지금, 무언가 개운치 않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개그코드도 있는데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적당히 가벼운 의학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의학 드라마’는 자칫하면 어정쩡해지기 쉬운 장르다. ‘어차피 한국 드라마는 기승전 로맨스’라는 말도 있지만, 그동안 한국 의학 드라마는 꾸준히 진화해왔다. 김명민이 희대의 연기를 보여주었던 <하얀거탑>부터 시작해서 <뉴하트>, <골든타임>, <굿닥터>까지 병원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의학 드라마들은 한국 드라마계에 계속 등장했다. 그렇기에 ‘로코’와 ‘의드’의 균형을 모두 맞추는 드라마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사생결단 로맨스>는 ‘로코’와 ‘의드’의 균형을 맞추는 것까진 성공한 듯하다. ‘로코’와 ‘의드’ 중 더 집중하는 분야는 전자다. 그렇기에 다소 뻔한 설정과 캐릭터들이 보인다. 까칠한 한승주, 따뜻한 주인아, 따뜻한 연하남 차재환, 못된 주인아의 의붓자매 주세라까지. 그러나 로코에 있어서 이런 설정은 필수인 동시에 장점이 되기도 한다. 같은 월화드라마에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의 차기작, JTBC <라이프>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별점이 된다. 같은 의드이지만 ‘로코’라는 점에서 타깃으로 하는 시청자가 다르다.
동시에 <사생결단 로맨스>는 로코 특유의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되, 의학 드라마로서의 정체성도 놓치지는 않는다. 두 주인공을 각각 ‘사랑과 공감의 호르몬 옥스토신의 화신’과 ‘경쟁과 승부욕으로 똘똘 뭉친, 걸어 다니는 테스토스테론’으로 지칭한다. 의드답게 리얼한 수술씬이 자주 등장하는 편이고, 주요 캐릭터들이 좋은 의사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로코 의드’라는 균형을 맞추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사생결단 로맨스>는 익숙하지만 시원한 아이스크림 같은 드라마다. 다소 뻔하지만 즐겁게 볼 수 있고, 의드로서의 정체성은 놓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주인공 티는 냈으면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물어본다면, 캐릭터의 매력이다. 뻔한 로코 좋다. 의드로서 다양한 수술 씬과 효과도 좋다. 그러나 로코의 최대 강점은 결국 매력적인 캐릭터다. 사건은 뻔하더라도 소위 ‘연애세포’를 자극할 만큼 캐릭터들이 사랑스러워야 한다. 그러나 <사생결단 로맨스> 속 한승주와 주인아는 아직 제대로 매력을 드러내지 못했다.
가장 아쉬운 것은 한승주의 캐릭터성이다. 까칠한 캐릭터도 좋고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히 챙겨주는 캐릭터도 좋다. 그러나 아무리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캐릭터라도 까칠한 것과 폭력적인 것은 다르다. 이 차이를 짚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한승주는 남자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시절이야 남자 주인공이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라고 해도 명대사가 되었다. 그러나 데이트 폭력이 화두가 되는 2018년의 드라마는 그러면 안 된다. 폭력이 까칠/시크와 동의어가 되면 안 된다.
주인아는 그나마 한승주에 비하면 낫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캐릭터로 보일지는 몰라도, 한승주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서 한승주를 도발할 줄도 알고 의사로서 성장하는 캐릭터다. 그러나 주인아의 캐릭터 한계는 한승주와 맞물려서 나타난다. 한승주가 절친한 친구의 죽음과 의사로서의 실패로 인해 방황하는 동안, 주인아는 한승주를 ‘돌봐주는’ 캐릭터가 되어버리고 만다. 주인아에게는 자기만 바라봐주고 착한 연하남 차재환도 있는데, 굳이 성질머리 못 죽이는 한승주를 치료해주겠다고 하다가 돌봐주는 것이다. 이런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남에게 헌신하는 ‘캔디’ 캐릭터가 되기 십상인데, 주인아의 캐릭터성이 과하다고 시청자들이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도 설탕을 너무 많이 넣으면 질린다. <사생결단 로맨스>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받으려면, 두 주연의 캐릭터성을 더 조절해야 한다.
더 시원한 로맨스를 기대해
그나마 한승주와 주인아가 서로 오해를 풀면서 러브라인이 진행될 기미가 보인다는 점은 다행이다. 주연과 조연 캐릭터들이 어우러지면서 소소한 개그 씬들도 재미를 보탠다. 한승주가 요리를 하면서 허세 부리는 장면, 한승주의 부모님이 주인아에 대해서 오해하는 장면 등등이 그동안 <사생결단 로맨스>에서 웃음 포인트가 되었다. 한승주 친구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진실이 밝혀지면 한승주와 주인아의 로맨스가 한 걸음 발전할 것이다. 그때까지 ‘로코 의드’로서의 매력을 <사생결단 로맨스> 제작진들이 더 잘 살려주었으면 한다. 균형은 유지하고, 캐릭터성은 조금만 더 조절하기. 그러면 익숙하지만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드라마가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