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1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녕 Oct 01. 2018

그래서 평화의 맛이 뭐지?

<MBC 스페셜> 남북정상회담 특집: 평화의 맛, 고향의 맛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고 싶다


자고로 냉면은 매력 있는 음식이다. 쫄깃쫄깃한 면과 식초와 섞여 상큼하되 깊이 있는 국물, 면 위에 얹은 고명의 조화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냉면을 유독 좋아하던 아빠 때문에 어릴 때부터 서울의 유명한 냉면 집은 거의 돌았는데, 그때마다 냉면 앞에 항상 ‘평양’ 혹은 ‘함흥’이 붙어 있었다. 그런 단어들을 볼 때마다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태원에 가면 멕시칸이고 불가리안이고 다 접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서울에서 ‘평양’과 ‘함흥’이 아무 이질감 없이 붙을 수 있는 곳이 냉면집 말고 또 있을까. 그래서 아빠를 따라 냉면을 먹을 때마다 “내가 먹는 냉면이 진짜 평양에도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먹었다. 



내 생활 속 가장 익숙한 북한 음식인 냉면은, 남북관계가 호전되고 있는 2018년에도 다시금 나타났다. 그 이름도 유명한 옥류관 냉면이 남북정상회담에 나타난 날, 서울의 수많은 냉면 집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인천 국제공항에는 잠시 옥류관 서울 1호점이 생겼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통일은 “평양에서 옥류관 냉면을 먹는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에 맞게 <MBC 스페셜>은 <옥류관 서울 1호점>에 이어, 남북정상회담 특집 2부작 <평화의 맛>, <고향의 맛>으로 북한의 맛을 찾았다. 


고향의 맛은 우리의 맛이 되어


솔직히, 1부 <평화의 맛>보다는 2부 <고향의 맛>이 더 와 닿았다. 2부 <고향의 맛>은 6.25 전쟁 이후 이북 실향민들이 어떻게 남한에서 이북 음식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북 음식이 우리의 식습관에 얼마나 깊게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준다. 맛있는 음식이 많기로 유명한 속초는, 많은 음식이 이북 실향민들로부터 유래되었다. 속초에 가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 중 하나인 오징어순대는 북한음식인 명태순대가 시초고, 죽을 먹을 때 흔히 나오는 반찬인 가자미식해 역시 이북 실향민의 음식이다. 평양냉면뿐만 아니라 다른 이북 음식들 역시 우리의 일상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고향의 맛>은 속초의 역사적 배경을 이북 음식만이 아닌,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서 다시 찾는다. 실향민들의 고향, 속초 아바이 마을에서 20년째 함흥냉면을 만드는 김춘삼 씨는 그 자체로 분단 역사를 증명한다. 어머니의 가게를 이어 함흥냉면을 만들기 전, 김춘삼 씨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어부로 살았다. 그러나 1971년, 울릉도로 고기잡이를 하러 갔다가 고작 열다섯 살에 1년간 납북이 되었다. 고된 납북 생활 끝에 남한에 돌아와서도 그는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었다. 고작 열여섯 살에 기소된 김춘삼 씨는, 이제 역설적으로 북한음식 함흥냉면을 판다. 아이러니한 남북 역사의 한 장면이 그대로 담긴 듯하다. 


평화의 맛은 과거에 있나, 지금에 있나? 


2부 <고향의 맛>은 이북 실향민들의 삶과 궤적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그러나 1부 <평화의 맛>은 주제의식이 명확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평화의 맛> 역시 평양냉면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옥류관 최초의 주방 공개나 옥류관 냉면을 먹어본 방북 인사들의 인터뷰 등등이 이어졌지만, 정확히 ‘평화의 맛’이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평화의 맛은 북한의 옥류관과 서울의 평양냉면인가, 남북의 평화 분위기인가, 아니면 이산가족의 슬픔인가? 고향의 맛은 ‘이북 실향민들의 역사’라는 키워드가 일관되게 나타났기 때문에 속초 음식과 김춘삼 씨의 사연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나 <평화의 맛>은 키워드가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평양냉면과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이 어우러지지 않는다. 평화의 맛이 과거에 있는지, 현재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현재의 맛을 알고 싶다


현재와 같이 남북관계에 평화 기류가 흐른다면, 다시 금강산 관광을 가고 남북 교류가 더 활발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TV에서 북한의 모습을 더 만날 기회도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단순히 남북 관계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북한의 모습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기에 TV에서 더 만나보고 싶다. 그렇다면 TV 프로그램에서 북한의 모습은 어떻게 조명되어야 하는가?


1부 <평화의 맛>에서 아쉬움은 느꼈던 지점은 단순히 일관된 키워드의 부재뿐만 아니라, <평화의 맛>의 고유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산가족과 남북정상회담은 굳이 <평화의 맛>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할 필요가 없었다. 뉴스나 시사 토크쇼 등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다른 플랫폼에서도 다룰 수 있는 소재들이다. <평화의 맛>의 키워드가 평양냉면이라면, 시청자들이 대부분 궁금해하는 것은 평양냉면과 옥류관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그리고 북한 사람들도 남한 사람들만큼 평양냉면을 많이 먹고 싶은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설명할 때 굳이 연예인이 필요하지 않다. 즉, 시청자들이 궁금해하고 새롭게 느끼는 것은 북한의 ‘현재’다. 


JTBC 추석특집 다큐멘터리 <두 도시 이야기>는 이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두 도시 이야기> 역시 옥류관과 서울의 양상을 보여줬지만, 현재의 사람에 더 집중했다. 촬영 PD와 북한 식당 직원이 직접 대화하는 모습, 북한의 양식당에서 바질을 직접 키우는 모습 등등 북한 사람들이 우리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앞으로 등장할 북한 관련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남북 평화 기류와 함께 통일이 가깝게 다가옴과 동시에, 북한 사람들 역시 우리와 더불어 살 ‘사람’이라는 것을 TV 프로그램들이 더 일깨웠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려원이 혼자 사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