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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Nov 05. 2018

어서와, 나는 처음이지

<우리동네 피터팬>: 공감하니 응원한다

“니가 장애인이라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절친했던 내 친구는, 장애인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면 다들 잘 모른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농촌에서 명문대를 가고 똑 부러진 내 친구를 보고 장애인이라 섣불리 판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사회가 흔히 생각하는 ‘장애인’의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생각하는 장애인은, 하반신이 불편해 집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하는 신체 장애인이나 안마사 이외에는 딱히 직업의 선택지가 없는 시각장애인이다. 즉,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을 그저 ‘불쌍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내 친구가 장애를 누군가에게 밝히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니가 장애인이라고?”였다. 넌 불쌍하지 않잖아. 우리와 비슷해 보이잖아.  


그래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일상에서 장애인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한국보다 훨씬 많은 장애인들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 휠체어를 타고 다녔고, 버스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3-5분 정도 리프트를 타고 올라와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그곳에서 장애인은 ‘불쌍한 존재’가 아닌 ‘인간’이었다. 


그래서 올해 9월 12일부터 방영된 새로운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우리동네 피터팬>이 반가웠다. 한국에서 장애인은 일상에서도 보기 힘들지만, 미디어에서도 있는 그대로 대면하기 힘든 존재다. 그래서 유독 <우리동네 피터팬>의 ‘불쌍하니까 모금한다’가 아닌, ‘공감하니까 응원한다’라는 기획 의도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저, 사람


<우리동네 피터팬>은 최근 MBC 시사 예능 프로그램들과 유사하게 관찰 예능의 플랫폼을 띠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며느리와 그 가족을 관찰함으로써 며느리들이 겪는 억울함에 의문을 제기했다면, <우리동네 피터팬>은 좀 더 유연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우리동네 피터팬>은 장애인들의 일상에서 갈등이나 아픔을 부각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동네 피터팬>은 장애인의 삶과 소망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점, 그러나 비장애인에 비해서 장애인들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방영된 1-6회까지 등장한 신현오 씨의 캐스팅은 <우리동네 피터팬>의 기획의도에 걸맞았다. 27살, 대학을 갓 졸업해 창업에 도전하는 초보 사장은 평범해 보인다. 그가 희귀병으로 인해 팔다리의 근육이 하루하루 쇠약하는 신체 장애인이라는 점만 빼면. 즉, 장애인은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존재’다. 그래서 <우리동네 피터팬>은 신현오 씨의 평범한 삶과 그 삶을 방해하는 사회를 보여준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장애인을 위한 여행사를 세우려는 신현오 씨는 꿈을 가진 청년이다. 그러나 청년의 꿈을 방해하는 것은 그에 대한 소소한 태클이다. 사무실을 찾아 부동산에 가도 아저씨에게 ‘의외로’ 밝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장애인들이 여행을 가고 싶어 할까?”라는 회의를 마주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우리동네 피터팬>은 이에 대한 신현오 씨의 반박을 들려주며 장애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교정한다. 이는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방송이 취해야 할 적절한 태도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우리동네 피터팬>에서도 지양해야 할 표현과 태도가 다소 보였다. 기획의도로 돌아가 보자. 


“순수한, 하지만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던 어른아이 피터팬처럼 본인의 의지로, 혹은 세상의 시선 때문에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장애인들. 2018년 가을, 대한민국의 피터팬들이 깨어난다!”


여기서 걸리는 점은 바로 ‘순수’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비교적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좁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순수하다고 전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장애인이 ‘순수’한가? 이 역시 편견이다. 장애인 역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며, 현실에 순수한 장애인이 있다고 한들 모두가 그렇다고 전제하는 것은 선입견 혹은 억압이다. ‘순수’의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장애인은 ‘나쁜’ 장애인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장애인은 무조건 순수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동네 피터팬>의 의도대로,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의도를 더 들여다보면 “장애를 이겨낸 스토리”, “장애를 극복한” 등의 표현도 등장한다. 이 역시 잘못되었다. 시각장애인이 안막 수술을 받는 등 장애를 없애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술비용도 비싸거니와 수술 부작용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애인은 수술을 선뜻 선택하지 않는다. 즉, 장애는 장애인이 한순간 짚고 넘어갈 수 있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애증의 동반자에 가깝다. 따라서 제작진은 ‘장애 극복’을 대체할 수 있는 표현과 프레임을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 외에도 모든 역경을 극복하는 ‘슈퍼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동기 부여 대상으로 만드는 등 장애인에게 잘못된 프레임을 적용하는 것을 최대한 조심하고 지양해야 한다. 


설 자리가 더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동네 피터팬>은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TV 프로그램 중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내세우는 프로그램이기에 기대를 건다. 올해 9월 종영한 JTBC 드라마 <라이프> 역시 정형 전문의이자 신체장애인인 예선우를 주요 캐릭터로 내세웠다. 그러나 한번 묻고 싶다. 이게 최선인가?


장애인들은 설 자리가 더 필요하다. 특히 TV의 파급력을 고려하면, TV에 더 많은 장애인들이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종영한 EBS <까칠남녀>나 KBS <거리의 만찬>과 같은 토크쇼에 장애인 고정 패널이 나오는 날을 기대한다. 그러면 꿈꾸는 피터팬은 이제, 우리와 함께 꿈꾸고 성장하는 피터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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