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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Nov 24. 2018

War is War

<저니스 엔드>: 포화 속 침잠

※ 브런치 무비패스로 본 영화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아, 꿈도 희망도 없다



어째 최근에 본 전쟁 영화들이 하나 같이 꿈도 희망도 없다. 안 그래도 힘든 현생에서 영화까지 굳이 그래야 하나 싶긴 하다만, 전쟁의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을 잘 표현해내는 것 역시 전쟁 영화의 미덕 중 하나다. 유명한 나치 장교 하이드리히와 그를 암살하고자 하는 체코 레지스탕스를 그린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 역시 레지스탕스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저니스 엔드>는 그보다도 전쟁을 개인적이고 내면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이 접근은 성공했다. 영화 포스터에서 자랑스럽게 내 보이는 ‘로튼토마토 93% 지수’가 이를 증명한다. 

(같이 보러 간 친구가 남자 셋이 주연인 영화가 로튼토마토 지수가 이렇게 나온 게 너무 신기하다 그러더라)


그저 버틸 뿐 



<저니스 엔드>는 1차 세계대전 초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프랑스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하는 영국군에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롤리 소위(에이사 버터필드)가 온다. 롤리는 원한다면 삼촌의 덕으로 후방에 머무를 수도 있었지만, 굳이 최전방으로 나선다. 최전방에 가고 싶다는 치기 어린 마음도 있지만, 누나의 연인이자 자신의 친구인 스탠호프 대위(샘 클라플린)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롤리가 최전방에 오자마자 처음 만나는 사람은 점잖은 어른, 오스본 중위(폴 베타니)다. 

그는 롤리에게 미리 경고한다. 


“You’d find him changed, I expect.”


실제로 스탠호프 대위는 예전의 친절한 주택 관리인이 아니다. 그는 위스키 없이는 하루를 버티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자며, 같은 부대 내 히버트 중위 역시 오랜 전쟁 속에서 지렁이가 득실 거리는 환영을 본다. 부대의 최연장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오스본 중위는 상사인 스탠호프 대위를 악몽에서 달래줄 정도로 침착해 보이지만, 그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영국에 있는 가족이다. <저니스 엔드>는 각 개인이 추악한 영화 속에서 어떻게 버티는 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스탠호프는 위스키로 환영을 잊으며,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휴가 때도 연인을 만나지 않는다. 히버트는 환영을 버티지 못하고 후방으로 돌아가겠다 말하지만, 스탠호프는 자신도 다르지 않다고 고백한다. 오스본은 휴가 때 가족을 만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아내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에서 말한다. 



“These youngsters don’t realize how unlucky they are.”


전쟁터에 던져진 불운한 젊은이들은, 그저 불행을 견딜 뿐이다. 


전쟁은 인간을 어떻게 점령하나 



전쟁 속 개인의 내면을 강조하는 점에서 <덩케르크>와 비슷하지만, 국가에 대한 시선은 분명히 다르다. <덩케르크>는 결말에서나마 영국의 승리를 강조했다면, <저니스 엔드>는 오히려 내부의 적에 시선을 돌린다. <저니스 엔드>에서 독일군은 오히려 믿을 수 있는 적군에 가깝다. 안 그래도 피폐해진 병사들을 더 지치게 하는 것은 군대의 윗선들이다. 오스본 중위와 롤리 소위가 작전을 실행할 때도, 밤에 작전을 실행해야 위험이 덜하지만 장군들의 회의가 8시에 있다는 이유로 저녁에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오스본 중위는 목숨을 잃지만, 롤리 소위가 획득한 정보도 마뜩지 않다. 장군은 첫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롤리 소위에게 훈장감이라 말하지만, 그저 말뿐이다. 정신적 지주를 잃은 스탠호프는 울부짖지만, 여전히 포화가 울리는 전장 속에서 장군과 함께 와인을 마셔야 한다. 


전쟁 속에서 인간의 본성은 망가지고 부서지지만, 

전쟁에 점령당한 개인을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곧 돌아 갈게



꿈도 희망도 없는 영화답게, 모든 주연들이 전장 속에서 죽는다. 롤리 소위는 등에 총을 맞고 눈도 감지 못한 채로 싸늘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영화 속에서 흔들리는 내면을 가장 많이 드러낸 스탠호프 대위는 롤리의 죽음을 목격하고 전투모도 쓰지 않은 채 밖을 나선다. 그리고 스탠호프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비어있다. 


참 잔인하게도, 이 영화의 끝은 평화로운 영국 주택에서 끝난다. 

롤리가 죽기 전에 쓴 편지를 받은 롤리의 누나는 편지를 찬찬히 읽는다. 

편지 속의 롤리는 애써 누나를 안심시키려고 하지만, 이를 어쩌나. 


전쟁은 그저 전쟁인 것을. 

 

PS. 오스본 중위 역할 배우가 익숙하다 싶더니, <어벤저스> 시리즈의 비전 역할 배우였다. 

로봇 역할만 보다가, 지금 보니 멋있는 중년 배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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