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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Dec 30. 2018

사랑, 사랑, 그저 사랑

<갈매기>: 그러나 빈 삶을 채울 수는 없네

※     하이라이트 측의 초대로 시사회에서 본 영화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낭만은 개뿔이



한국 영화 마케팅사들 보면 하나 같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제발 어떤 영화든 때깔 좋은 로맨스로 포장하려는 짓 좀 그만뒀으면 좋겠다. “시대를 초월하는 러브버스터”라니, 원작이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인 영화가 할 소리는 전혀 아니지 않냐고. 영상미도 좋고 러시아 고전풍의 느낌도 좋지만, 이 영화는 전혀 로맨틱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안나 카레니나> 풍의 러시아 막장극이었음 막장극이었지. 애초에 아들의 연인과 어머니의 연인이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가 아름다운 로맨스 일리가…?


나약한 인간



<갈매기>는 오히려 인간사의 무료함을 잘 보여준다. 유명 여성 배우인 이리나의 아들, 콘스탄틴은 자신의 힘으로 연극 작가의 길을 걷고자 하나 쉽지 않다. 그의 연인 니나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재혼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을 재산이 없다. 이웃집 마샤는 콘스탄틴과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자조하고, 나이 든 시녀 폴리나는 지금이라도 돈 박사와의 사랑을 이루려고 한다. 작가가 되고 싶어 했던 이리나의 오빠 소린은 일도, 사랑도 맘대로 하지 못한 채 늙어버리고 만다. 



그나마 젊은이와 노인의 차이가 있다면, 젊은이는 아직 삶의 변화를 꿈꿀 수 있다는 점이다. 콘스탄틴은 성공한 보리스처럼 되고 싶어 하면서도 형식을 깨려고 노력한다. 연극배우를 꿈꾸는 니나는 작품과 상징에 집착하는 콘스탄틴과 다르게, 여유로운 작가 보리스에게 빠져든다. 


<갈매기>는 어떻게 나약한 인간이 무료하고 지루한 삶을 버티는지에 대해 묻는다. 


막장 속 환장



개인적으로는 영화 자체에 대해서 칭찬해주고 싶지는 않다. 영상미로 보면 괜찮은 영화지만, 원작의 내용은 완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러시아 막장극 속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다루려면 더 깊게 다루던지, 연극과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면 더 파고 들어가야 했다. 둘 중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으니, 영화의 본질이 가려질 수밖에 없다. 


<갈매기>의 스토리라인 자체도 엄청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네트 베닝의 팬인 친구와 영화를 함께 보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아주 적절한 요약을 했다. 


“안톤 체호프의 자의식 과잉 아주 잘 봤습니다. 콘스탄틴한테 얼마나 감정 이입하면서 썼을까요?”



니나 캐릭터는 연극 속 전형적인 ‘썅년’이다. 상징에 대해 고민하는 콘스탄틴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골 빈 여성’이고, 그렇기에 겉모습이 화려한 보리스와 사랑에 빠져 모스크바로 향한다. 그러나 니나는 연극배우로서 성공하지는 못한다. 내면의 갈매기를 죽여야 성장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이 갈매기라고 느껴진다던 콘스탄틴을 시골 호수의 니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연극배우로서의 여정이 실패한 후에야 니나는 자신을 갈매기라 칭한다. 작가가 니나를 굳이 ‘실패시킨’ 이유는 묻지 않아도 명확하다. 


“터진 소리일 뿐이야”


그나마 영화에서 주목할만한 포인트는, 영화 속에서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스토리라인은 마음에 안 들어도, 안톤 체호프의 필력은 결코 무시 못한다. 짝사랑을 고백하는 마샤의 슬픔, 애증의 이리나-콘스탄틴 모자가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의존하는 모습 등에서 나오는 명대사가 한 둘이 아니다. 모든 명예와 부를 지닌 명배우 이리나가 한참 연하인 연인 보리스에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다. 



니나가 모스크바로 간 2년 후, 콘스탄틴은 어느 정도 성공한 극작가가 된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여전히 우울하다. 피아노를 치다가 몰래 니나를 만난 후에 콘스탄틴은 무료함과 우울함으로 더 빠져든다. 


영화가 원작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는데, 영화는 엔딩이 명확하지 않다. 원작에서 콘스탄틴의 죽음은 명확하지만, 영화에서는 즐거운 가운데 하나의 소리만 들린다. 콘스탄틴이 총을 잡는 장면은 나오지만, 그 후의 콘스탄틴은 나오지 않는다. 돈 박사는 자신의 의료기기가 터졌을 뿐이라며 이리나를 안심시키지만, 관객은 끝내 진실을 모른다. 한번 자살 시도한 아들을 걱정하는 이리나의 모습만 나올 뿐이다. 



조금은 궁금하다. 콘스탄틴은 정말 스스로를 죽였을까, 아니면 다시 삶을 견디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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