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나인틴>: 오디션 프로그램의 트렌드 세터가 되려면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구한 역사
오디션 프로그램은 많은 이들에게 설렘으로 다가온다.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는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고, 연예계 기획사들에게는 캐스팅의 기회며, 대중들에게는 새로운 가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TV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최근 TV 오디션 프로그램은 꽤 특이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2010년대부터 한국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곳은 누가 뭐래도 엠넷이다. 2009년 엠넷에서 방영된 <슈퍼스타K>가 시작이었다.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은 한국 아이돌 2세대의 전성기였지만, 천편일률적인 아이돌 음악에 질린 사람들도 그만큼 많았다. <슈퍼스타K>는 이러한 갈증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력파 보컬리스트들을 발굴했다. 그러나 엠넷의 오디션 신화는 <슈퍼스타K>에서 끝나지 않았다. 모두가 한국 힙합의 앞길이 안 보인다고 말하던 2012년에 방영된 엠넷의 <쇼미더머니>는, 올해 <쇼미더머니 777>까지 이어질 정도로 막강한 음원 강자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2016년,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패러다임을 바꾼 <프로듀스 101> 시즌 1이 시작되었다. 이제 오디션에서 실력파 가수는 볼만큼 본 사람들에게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단 새로웠다. 101명의 연습생들이 같이 춤을 추는 모습에 모두가 경악했지만, 곧 한국에서 “픽미픽미 픽미업”과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엠넷은 다시 한번 오디션 도박에 성공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엠넷을 제외한 다른 한국 방송국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벤치마커에 가까웠다. 최근의 특이점이라면, 엠넷과 그 외의 방송국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슈퍼스타K>를 벤치마킹한 SBS <K팝스타>나 MBC <위대한 탄생>은 중박이라도 쳤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의 성공 이후에 등장한 JTBC <믹스나인>이나 KBS <더유닛>은 화제성 측면에서 실패했다. 그렇다면 뒤늦게 등장한 MBC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언더나인틴>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이돌을 아십니까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성공을 결정짓는 요소는 크게 3가지다. 출연진과 편집의 재미까지는 예상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알지 못하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한국 아이돌 컬쳐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음원 중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필요 없는 요소지만,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요소다. <프로듀스 101>과 다른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성공 여부가 이 지점에서 갈렸기 때문이다.
음원형 가수가 한 가지 요소에 집중된 선물이라면, 아이돌 가수는 웬만한 요소는 다 있는 종합 선물 세트에 가깝다. 여기에 한국 아이돌 컬쳐의 고유성까지 생각해보면, 음원형 가수와 아이돌 가수의 괴리는 더더욱 커진다. 음원형 가수는 20대 후반에 데뷔해도 늦지 않지만 아이돌 가수는 어릴수록 좋다. 실력파 혼성 보컬 그룹 어반자카파는 성공할 수 있어도 한국 아이돌계에서 혼성 그룹이 성공하기는 힘들다. <프로듀스 101>은 엠넷의 이름에 걸맞게 이러한 아이돌 컬쳐에 대한 이해가 존재했다. 기존에 데뷔한 아이돌이 아닌 어린 아이돌 연습생이 주요 출연자들이었으며, 남녀 시즌을 나누어서 진행했다. 반면 <믹스나인>은 혼성으로 진행한 점이, <더유닛>은 한번 데뷔한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점이 소위 ‘입덕 장벽’으로 작용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타켓 층의 문화에 맞지 않았다.
<언더나인틴>은 <믹스나인>과 <더유닛>의 실수는 피해 갔다. 제목에 걸맞게 만 19세 이하의 남성 참가자만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다만 출연진들의 특성이 아이돌과 잘 맞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포지션 별로 팀을 나눈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각 팀에 있는 참가자들 중 다른 요소를 소화할 수 있는 참가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랩 팀이 안무를 쫓아가지 못하는 모습이나, 퍼포먼스 팀의 보컬 실력이 입증되지 않은 점 등은 아이돌 가수에 맞지 않는다. 각 포지션 별로 주제곡이 달라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점도 <언더나인틴>의 단점이다.
<언더나인틴>은 시청자들에게 “당신의 아이돌은 누구입니까?”라 물었다. 그러나 되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아이돌을 아십니까?”
다음 오디션 트렌드는?
아이돌 컬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언더나인틴>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차별성이다. 다른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차별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력파 뮤지션 오디션 프로그램이 저물어갔듯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트렌드가 지나가는 날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방송국이 해야 할 일은 지나가는 트렌드를 붙잡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트렌드를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SBS <더 팬>은 차별화에 성공했다. SBS는 <K팝스타> 시절부터 트렌드를 따라가되 조금의 차별점은 두었다. 그래서 <K팝스타>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중간점으로 <더 팬>을 내놨고, 전략이 통했다. 다음 오디션 트렌드가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언더나인틴>에서 트렌드는 느껴질지언정 변화는 느껴지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더 좋은 오디션 프로그램
<언더나인틴>은 이미 시작한 방송이니 방향을 바꾸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보고 싶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 그룹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제복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프로듀스 101>의 제복은 시즌을 불문하고 ‘교복’이었다. 어린 학생이 입고 치마/바지로 명확하게 성별을 나누는 교복. 예전에 비해 한국 아이돌 뮤직비디오의 서사는 풍성해졌지만, 전제는 비슷하다. 대부분의 아이돌 서사는 철저히 성별 이분법적이고 이성애 중심적 연애 서사다. 수많은 변주가 존재하지만 전제는 견고하다. 그래서 혼성 그룹이 성공할 수 없고 어릴수록 좋으며, 연애는 금물이다. 안 그래도 팬들의 수많은 스트리밍과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아이돌 그룹의 성공은, <프로듀스 101>에서 투표로 수치화되어 나타났다. 경쟁은 재미있지만 더 치열해졌다. 팬은 ‘국민 프로듀서님’이 되었고, 중소 기획사 아이돌도 간신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을 위해 투표를 부탁하는 사람들과, 등수에 일희일비하는 연습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물어보자. 팬이든 아티스트든 끊임없이 희생해야 하는 이 제로섬 게임을 계속해야 하나?
더 좋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수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