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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Jul 10. 2019

꼭꼭 숨어라

<기묘한 이야기>: 이상한 추억 찾기

※ 시즌 2, 3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게 뭐라고 4시간을 기다려?



원래부터 아는 동생과 넷플릭스 이용권을 나눠 쓰고 있었지만, 드라마 기획 인턴을 하면서 넷플릭스 ‘알못’에서 ‘잘알’이 되어가고 있다. 넷플릭스를 처음 접한 건 미국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였지만, 그때는 많이 보지도 않았고 기껏해야 디즈니 재탕을 많이 했다. 넷플릭스 코리아가 처음 론칭했을 때도 <센스 8>이니 <루머의 루머의 루머>이니 다 보고는 싶었는데 잘 못 보았다. 지금은? 물론 향후 진로를 위해서라도 넷플릭스는 필수지만 그보다도 당장 눈 앞에 있는 인턴 자료 조사 때문에 많이 보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자료를 뒤지다 보니 <나르코스>, <브레이킹 배드>와 같은 미드 고전부터 <후아나 이네스>, <3%>, <베를린의 개들>과 같은 멕시코/브라질/독일 드라마들까지 다 보게 되었다. 참 좋은 세상이야. 


사실, 내게 <기묘한 이야기>는 넷플릭스에서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아니었다. <블랙 미러> 시리즈와 외전 격인 <블랙 미러: 밴더스니치>는 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지만 <기묘한 이야기>는 영 내 취향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직감이 틀리기를 바랐지만 역시나였다. <블랙 미러>는 취향 저격이었고, <기묘한 이야기>는 보는 내내 징그러움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시험하고 있었다. 글 쓰기 차원에서 홍대 <기묘한 이야기> 팝업 스토어를 장장 4시간을 기다려 다녀왔건만 내 취향이 아니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 취향은 아니어도 쓰고 싶은 이야기는 있다. 전 시즌들과 차별화되는 시즌 3의 요소 때문에라도 시즌 4가 나오면 애증의 마음으로 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Remember Great America



<기묘한 이야기>가 미국판 ‘응답하라’로 불린다는 것을 알고 기가 막힌 비유라고 생각했다. 100% ‘응답하라’ 시리즈라고 하기에는 쪼끔 잔인한 호러지만, 1980년대 초 미국을 복고풍으로 복원한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초 미국의 분위기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기묘한 이야기>가 인기가 많다는 점은 처음에는 좀 의아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미국화’가 많이 진행된 나라니 의외는 아닐 수도. 


머리가 꽃 모양이면서 사람과 고양이를 잡아먹는 데모고르곤과 데모독, 그리고 쥐와 사람의 시체를 터뜨려 몸집을 키우는 마인드 플레이어를 시즌 1부터 3까지 견디면서 굉장히 고통스러웠지만(징그러운 거 싫어 싫다고), 1980년대 미국을 충실히 재현하면서 확장하는 <기묘한 이야기>의 복고풍 세계관만큼은 감탄했다. 애초에 <기묘한 이야기>의 설정에서부터 스티븐 킹의 <It>이나 <엑스맨> 시리즈 등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보이고, 시즌 1에서부터 미국의 시골(?)과 학교를 현실감 있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렇게 1980년대 초 미국의 세계관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확장된다. 시즌 2에는 미국의 할로윈에 맞추어 개봉됐고, 시즌 3은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추어 개봉했다. 시즌 3은 시즌 1,2보다도 배경을 넓혀 향수를 자극한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큰 규모의 스타필드 몰, 선원 유니폼의 직원들이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화려한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찬 수영장과 파티.



시즌 3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세계관이 확장되면서 전 시즌들에 비하면 주제의식도 명확하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시즌 1-2는 데모고르곤과 데모독들이 호킨스를 공격하는 극한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가족애에 중점을 두었다면, 시즌 3은 이러한 가족애/인류애에 여전히 초점을 맞추면서도 훨씬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에 몰입한다. 난데없이 시골 호킨스에 소련의 대형 비밀 연구소가 들어온다는 점은 황당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기묘한 이야기>답기도 하다. 시즌 1-2의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로맨스와 우정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하지만, 스타필드 몰로 인해서 몰락하는 지역 상점과 소련과의 전쟁은 지독히도 그 시절의 찬란한 미국 아니던가. 


이러한 세계관의 확장이 재미있기도 하면서 조금 아쉽긴 하다. 초점이 소련과 지역 사회로 향하면서 <기묘한 이야기>가 묘하게 갖고 있었던 과학적 초점들이 조금씩 빛이 바래는 느낌이 든다. 물론 시즌 1에서도 일레븐이 연구소에서 소련의 정보를 알아내는 정보원으로서 활용되지만, 시즌 3에서는 전 시즌들에 비해 과학적 개념이 크게 등장하지 않는다. 시즌 1에서는 데모고르곤들이 출현한 평행 세계가, 시즌 2에서는 마인드 플레이어-데모고르곤-데모독을 모두 잇는 집단 지능이 주요 개념이었다. 시즌 3에서도 어마 무시한 자기장이 등장하긴 하지만 소련과 각종 음모론에 밀려난 나머지 지난 시즌들만큼 큰 파장을 주지는 못한다. 태초부터 <기묘한 이야기>는 “Remember Great America”의 서사였지만,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바람에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 


 트라우마로 묶인 가족



동시에 <기묘한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대한 드라마다. 그래서 데모고르곤의 세계로 넘어갔다가 마인드 플레이어의 잔해와 싸우고 트라우마를 겪는 윌, 평생을 연구소의 실험체로 살다가 사인방을 만나면서 바깥세상에 적응하고 자신의 과거를 마주치는 일레븐은 <기묘한 이야기>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기묘한 이야기>는 미국식 가족주의를 매우 강조하는 드라마이지만 한국 드라마들처럼 혈연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이 드라마 속 가족의 핵심은 ‘트라우마’다. 이 드라마에서 모성애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가감 없는 추진력을 자랑하는 윌의 엄마 조이스이지만, 부성애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일레븐과 단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은 짐 호퍼 경찰서장이다. 호퍼는 일레븐에게 자신의 죽은 딸을 보고 과보호하기도 하지만, <기묘한 이야기> 속에서 가족과 인류애로 엮이는 모든 이들은 트라우마를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낸시는 자신의 트라우마에 공감하지 못하는 스티브와 헤어지고 조나단과 만나는 거고.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어느 정도 담담함을 유지하는 윌을 제일 좋아한다. 현자 윌 만세. 


기억, 추억, 그리고 음모



기묘한 1980년대 초 미국과 호러와 가족주의의 결합은 희생을 요구한다. 시즌 2에서는 조이스의 애인 밥 뉴비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구했고, 시즌 3에서는 두 사람이 더 희생된다. 어머니와 헤어지기 전의 행복한 추억을 돌이킨 빌리는 마인드 플레이어에 찢기며 동생 맥스를 지켰고, 평행 세계의 문을 닫고 일레븐을 기억하며 호퍼는 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시즌 3의 마지막에서 일레븐이 울면서 읽는 호퍼의 연설문은 시즌 3의 희생을 결집해서 보여준다. 트라우마를 가장 크게 겪었을 바이어스 가와 일레븐은 호킨스를 떠나고 다른 이들은 남는다. 그러나 이들을 잇는 트라우마와 기억은 망자와 함께 공유되고 남는다. 


물론 소련과 관련된 음모론은 시즌 3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즌 3 마지막 화의 쿠키 영상은 꼭 보시라. 징그러운 괴물들이 환멸 나도, 시즌 4는 궁금해서라도 기다리게 될 테니까. 


PS 1. 발랄한 루카스 여동생 만만세. 

PS 2. 낸시도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파-워 유성애 월드 <기묘한 이야기>에서 계속 연애할 운명 같아. 실제로 조나단-낸시 배우들이 사귄다는 이야기 듣고는 좀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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