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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Apr 30. 2020

우리는 네모 안에서 서로의 손발이 된다

코로나 19를 지나며

네모난 방, 네모난 창문, 네모난 책, 네모난 화면.


코로나 19 이후 집에 있으면서 온통 네모난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네모가 가끔 감옥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네모난 감옥 같이 느껴지는 집. 주말에만 서울에 올라오는 아빠가 없을 때는, 집에는 오로지 엄마와 나뿐이다. 그전에 주로 학교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자기소개서를 썼으나, 이제는 할 일이 있어도 집에 머무는 수밖에 없다. 엄마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악착 같이 학교에 나갔는데, 지금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스터디를 하는 게 아닌 이상 집에 머무르고는 한다. 그렇게 엄마와 단 둘이 집에 있으니, 엄마와 나는 서로의 손발이 된다.


사실, 엄마는 주로 해오던 것들을 한다. 완벽주의자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내가 집에서 가사 일을 잘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내가 요리와 설거지와 청소를 배운 곳은 집이 아니라 영국에서 팀 프로젝트 막내로 에어비엔비에서 머무를 때와 미국 교환학생 시기였다. 그래서 여전히 집에서 하는 일은 요리와 같은 일은 아니다. 네모난 방의 네모난 책상 위에 수북한 책들을 가끔 정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코로나 19로 집에서 나가지 못하기도 하지만, 장을 보는 일 역시 예전보다 힘들어졌다. 샴푸는 예전만큼 싸지 않고, 핸드워시 제품 역시 할인은커녕 귀한 몸이 된 지 오래다. 각 약국에서 제공되는 공적 마스크의 질 역시 지역마다 얼마나 다른지. 가끔 일이 있을 때 들르는 신촌과 이대에서는 흔히 KF94의 온갖 질 좋은 마스크(예쁜 3M 검은색 마스크도 가끔 끼어 있다)를 샀지만, 의외로 집 주변의 광화문 약국들은 KF94보다는 KF80이 흔하다. 나는 코로나 19에서 엄마가 잘하지 못하는 나의 일을 찾았다. 컴퓨터와 앱을 잘 다루지 못하는 엄마가 놓치는 인터넷 딜들을 예전보다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신촌에서 KF94 공적 마스크와 각종 화장품 가게들에서 파는 다른 KF94 마스크들을 집에 들여왔다. 클리오 오프라인 매장에서 파는 KF94 검정 마스크들이 요즘 나의 은인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한다. 엄마와 내가 안온하게 머무를 수 있는 네모난 집 밖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다시 생각한다. 티몬에서 내가 3900원짜리 이불을 사고 싼 화장품을 사고, CJ ONE 앱에서 2만 원으로 항균 스프레이와 KF94 마스크 5개를 살 때 어디든지 향하는 배달원들을 생각한다. 코로나 19 사태에서 공공 서비스가 되어버린 배달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우를 받지 못하고 코로나 19의 위험에 노출된 배달원들을 생각한다.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비대면으로 물건을 가져다 놓고, 가끔은 물건을 가져갔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배달원들을 생각한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네모난 방에서 엄마 곁에 내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폰뱅킹, 스마트뱅킹을 여전히 하지 못해 은행 일을 ATM에서 해결하는 우리 엄마, 홈쇼핑 앱을 다룰 줄 몰라 홈쇼핑에서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나를 불러 앱 주문을 시키는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 주말 부부인 60대 우리 엄마 곁에 내가 없었으면, 코로나 19 사태에서 많이 외롭지 않았을까. 티몬에서 비싼 샴푸가 만원도 안 되게 판다는 것을 우리 엄마는 잘 몰랐다. 인터넷을 잘할 줄 모르고 친구가 많지 않고 밖으로 잘 나가지 못하는, 우리 엄마와 같은 중장년층을 다시 떠올린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뉴욕에서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10살 연상의 친언니를 생각한다. 대학 강사인 언니는 줌 인터넷 강의로 수업을 진행한다. 한국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의 뉴욕이지만, 그 와중에 줌으로 친구들과 무용 수업을 같이 하는 나의 유쾌한 언니. 이리저리 모은 KF94 마스크와 포장된 볶은 김치를 부모님과 함께 언니에게 보내면서 괜히 마음이 찡해졌다. 네모난 휴대폰 화면 너머로 마스크를 받아 기쁜 언니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나는 네모난 집에서 엄마와 서로 손발이 된다.

그리고 이 네모난 집 밖의 사람들과도 서로의 손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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